(정도일보)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김중섭 명예교수는 ‘형평사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며’라는 부제를 붙인 《되짚어본 형평운동》(북코리아, 472쪽, 2만 7000원)을 발간했다.
경상국립대 김중섭 명예교수는 형평사 창립지 진주에 소재한 경상국립대에 재직하며 40여 년 동안 형평운동을 연구했다. 이 책은 김중섭 명에교수가 2023년 형평사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한 저술 결과이다.
신분제는 5백 년을 조선 사회를 지탱한 제도였다. 1894년 신분제가 철폐됐지만, 신분 차별 관습은 20세기에도 계속됐다. 신분제에서 최하층 천민으로 온갖 차별과 억압을 받아온 백정이 1923년 차별 철폐와 평등 대우를 주장하기 위하여 형평사를 창립하고 형평운동을 벌였다. 1935년 대동사로 바뀔 때까지 평등 사회를 지향하며 활동한 형평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가장 오랫동안 지속한 사회운동으로 기록된다.
이 책은 형평운동의 역사적 과정과 의의를 논의한 뒤, 국내외 연구 성과와 동향을 총망라하고, 형평운동을 탐구한 저자의 연구 방법과 과정을 되짚어보고 있다. 그리고 근대 인권운동의 금자탑으로 평가되는 형평운동이 1920년대 당시로는 선구적인 인권 개념을 도입하고 인권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하여 다른 사회운동 단체와 협력한 연대 활동을 논의하고 있다.
이 책의 주요 성과 가운데 하나는 형평사 창립과 형평운동을 이끈 양대 지도자인 강상호와 장지필의 활동 이력을 소상하게 규명한 것이다. 3.1운동을 비롯하여 진주 지역의 여러 사회운동에 참여한 직업적 사회운동가 강상호는 백정 출신이 아니지만, 백정 지도자들과 협력하여 형평사 창립을 이끌었다. 그러나 강상호는 창립 초기에 본사를 진주에 두자는 진주파와 서울로 이전하자는 중부권의 서울파가 벌인 파벌 대립의 중심에 있었다. 형평사 총본부가 서울로 이전하여 전국적인 사회운동으로 발전하는 상황에서 경남 지역 활동가들은 1920년대 후반 이후에도 빈번하게 서울의 형평사 총본부와 갈등을 벌여 형평운동 발전을 가로막았다. 이 글은 형평사 내부의 파벌 대립 중심에 있던 강상호가 진주 지역의 사회 개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또한 1935년 이익단체로 전락하며 친일 활동을 벌인 대동사 지도자로서 보인 다면적인 모습을 밝히고 있다.
백정 출신인 장지필은 진주 인근의 백정을 이끌고 관찰사에게 차별 철폐를 탄원하는 부친의 활동을 목격했다. 그는 1910년 일본 메이지대학에 유학하다가 3년 만에 가정 사정으로 중도 퇴학하고 귀국한 뒤 1923년 진주의 형평사 창립에 참여했다. 이후 평생에 걸쳐 백정 권익 증진을 위하여 활동한 형평운동의 핵심 지도자였다. 형평사를 전국 조직으로 발전시키고 형평사원의 인권 증진과 사회적 연대를 이끈 지도자 장지필은 고려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하고 젊은 활동가들의 형평사 해체 시도를 막으며 갈등을 빚기도 했다. 형평사의 전업 활동가 장지필은 열성적으로 형평운동을 벌였지만, 1930년대 초 형평사 안팎의 압박 아래 형평운동의 퇴조를 막지 못했다. 대동사로 개칭한 이후 활동을 중지한 장지필은 1930년대 후반 일제가 전쟁을 벌이며 국민 총동원과 통제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다시 총본부에 참여하며 친일 활동을 벌였다. 해방 이후 장지필은 조봉암의 진보당에 참여한 이력을 남겼다. 이 책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장지필의 활동을 신문 보도, 일제 관헌 자료, 제적부 등을 통하여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진주 지역의 형평사 창립 과정을 규명하는 한편, 지역 형평운동 사례로서 진주 형평사를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형평운동 확산에 이바지한 전국 본사의 역할과 지역 형평사원들의 권익을 증진하는 지역 형평사 활동, 그리고 전국의 형평운동 발전 과정에서 소외된 변화 모습을 밝히고 있다. 이 장과 함께, 또 하나의 진주 지역 역사를 기록한 장이 있다. 이것은 해방 이후 거의 잊힌 형평운동 역사를 되살리며 기억하려는 진주 주민들의 기념사업 성립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며, 형평운동 역사와 정신을 기리는 지역 주민 활동을 기록했다.
이 책은 그동안 저자의 저서, 《형평운동연구: 일제 침략기 백정의 사회사》, 《평등 사회를 향하여: 한국 형평사와 일본 수평사의 비교》에 이은 또 하나의 괄목할 만한 형평운동 연구 성과로 평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