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흐름의 기술, ‘자산’보다 먼저 ‘흐름’을 지켜라ㅣ김한준 박사의 신중년 인생설계 (9)

- 은퇴가 두려운 건 돈이 적어서가 아니라 흐름이 끊겨서다

 

퇴직 후 가장 큰 불안은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돈이 돌던 리듬이 멈췄기 때문이다. 매달 급여가 들어오던 계좌가 조용해지는 순간, 사람들은 숫자보다 ‘흐름의 부재’를 먼저 느낀다. 여전히 통장에 퇴직금이 남아 있어도 마음은 불안하다. 익숙했던 현금의 순환이 끊기면 삶의 리듬도 함께 멈춘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2024)」에 따르면 60대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09만원으로, 50대의 63% 수준에 그친다.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의하면 전체 가입자 중 절반만이 연금을 받고 있으며, 평균 수령액은 62만원이다. 연금 개시 전 공백기(55~64세)엔 지출이 소득의 112%에 달해 이미 적자로 전환된다. 여기에 부모 돌봄, 자녀 결혼, 의료비 등 예기치 않은 지출이 겹치면, 흐름은 금세 마르고 불안은 커진다.

 

이처럼 은퇴의 위기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흐름이 관리되지 않아서 생긴다. 금융감독원 「금융생활조사(2024)」에 따르면 은퇴자 10명 중 4명이 “예상치 못한 지출로 예산이 붕괴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중 40% 이상이 의료·돌봄비용을 이유로 꼽았다. 정년 이후 삶이 불안정한 이유는 자산의 크기가 아니라, 돈이 순환하지 않는 구조 때문이다.

 

퇴직 이후의 재무설계는 ‘자산관리’보다 ‘현금흐름 설계’가 먼저다.
필자는 컨설팅 현장에서 “12개월 현금흐름표” 작성을 기본 원칙으로 제시한다. 소득·지출을 월 단위로 구분하고, 고정비와 변동비, 예기치 않은 지출 항목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도록 한다. 핵심은 ‘소비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고정비를 월소득의 60% 이내로 줄이고, 변동비는 필요에 따라 조정하며, 마지막으로 6개월분 생활비를 위기버퍼로 확보해야 한다. 이 단순한 습관이야말로 불확실한 미래를 지탱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패다.

 

고정비는 삶의 골격이다. 주거·통신·보험·교통비 등은 최소화하되, 예기치 않은 의료비나 가족지원비를 위해 ‘6개월 버퍼 자금’을 따로 확보해야 한다. 가계의 안정은 총액보다 ‘예측 가능한 흐름’에 달려 있다. 변동비는 지출 항목의 의미를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 비용이 나의 다음 생애 단계에 어떤 가치로 남는가’를 묻는 순간, 지출은 전략이 된다.

 

또한 은퇴 이후에는 소득의 다변화가 필수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령가구 소득 중 연금이 57%, 근로 17%, 사업 14%, 기타 12%를 차지한다. 여기서 근로·사업 소득이 30% 이상을 유지해야 삶의 리듬이 유지된다. 이를 위해 프리랜스, 지역멘토, 강의, 사회공헌형 활동 등 작더라도 ‘정기적 흐름’을 만드는 직무 설계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돈이 멈추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도 흐름 중심의 지원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의 연금예상서비스, 금융감독원의 재무진단 시스템을 통합해 ‘12개월 현금흐름 시뮬레이션’ 기반의 개인별 재무코칭을 제공해야 한다. 단순한 자산 안내가 아니라, ‘소득의 리듬’을 함께 설계하는 정책으로 진화할 때 제도는 실질적인 안전망이 된다.

 

이제 독자에게 묻고 싶다.
• 나는 지난 1년 동안 월별 소득과 지출의 흐름을 기록해본 적이 있는가,
• 고정비와 변동비의 구조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가,
• 예기치 못한 지출에 대해 최소 6개월치의 버퍼 자금을 마련해두었는가,
• 연금 외 근로나 활동 소득이 전체 소득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가,
• 그리고 나는 지금 돈을 단순히 모으는가, 아니면 지속적으로 흐르게 만들고 있는가.
이 다섯 질문 중 두 가지 이상이 ‘아니오’라면, 당신의 현금흐름은 이미 멈춰 있을지 모른다.

 

퇴직 후의 안정은 재산의 많고 적음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얼마나 건강하게 순환하느냐의 지속성에서 결정된다. 돈이 돌면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되면 계획이 다시 돌아간다. 자산은 언젠가 줄어들겠지만, 흐름은 관리하는 한 계속 이어질 것이며, 은퇴는 소득의 종료가 아니라 삶의 리듬을 다시 설계하는 기술의 시작이 될 것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