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퇴직 이후 가장 든든한 친구가 되는 곳 |김한준 박사의 신중년 인생설계 (6)

- “지역 공동체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인생 3모작의 뿌리”

 

“퇴직하고 나면, 과연 지역(동네)에서라도 인사를 나눌 수 있을까?”

 

사실, 많은 중장년들은 정년 이후에도 지금 사는 지역에 그대로 남아 은퇴 후 삶을 맞이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웃과의 교류가 끊겨, 익숙한 동네마저 낯설게 느껴지는 현실이다. 더 이상 ‘동네 친구’라는 표현이 가벼운 수사가 아닌, 은퇴 이후 삶의 안전망을 구축할 열쇠라는 것을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이른바 ‘지역 공감 관계 설계’ 인생 3모작의 실질적 출발점이다.

 

고전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를 현실로 풀어낸 노화 이론, 즉 ‘활동이론(Activity Theory)’은 정기적인 산책, 지역 모임, 봉사활동 같은 일상 활동이 삶의 회복력과 만족도를 크게 높인다고 말한다. 특히 이웃과의 꾸준한 만남과 식사를 반복적으로 경험할 때 정서적 안정과 건강이 동반 상승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연구 결과는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서울 강북구 마을 주민들이 주도하는 커뮤니티 케어에서는 전문가 중심이 아닌, 지역 중심의 상호 돌봄 네트워크가 노인의 자립과 건강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또한, 자원봉사나 동호회, 종교와 이웃과의 교류가 고령자의 삶의 만족도를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디지털과 대면 활동을 병행하는 구조도 필수가 됐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 커뮤니티나 화상 대화, 지역 SNS 채널에 적극 참여하는 어르신이 현저히 우울 증상이 낮았다는 통계도 눈에 띈다. 실제로 서울 강서구의 한 주민센터는 줌 기반 ‘온라인 서예 교실’을 운영했는데, 참여 어르신 다수가 “이웃과 대화할 주제가 생겨 동네 모임에 더 쉽게 나가게 됐다”라고 응답했다. 이는 지역 기반의 대면관계와 디지털 연결이 함께 구성될 때 ‘사회적 근력’이 강화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해외에서도 지역 기반의 자립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NORC(Naturally Occurring Retirement Community: 자연발생 노인커뮤니티)’는 본래 그곳에 사는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상호 돌봄 구조를 형성한 대표적 예다. 즉, 주소 중심의 말이 아닌, 감정 중심의 공동체가 그들의 삶을 지탱하게 만든다.
이처럼 ‘지역 중심 커뮤니티’는 선언이 아닌, 관계의 구체적 행동을 통해 구현된다. 실천을 위한 방법으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 웃으며 먼저 인사하기. "○○ 선생님, 오늘도 좋은 날이네요."라는 말 한마디가 모임의 시작이 된다.
  • 이름을 기억해 불러주기. 작은 친절이지만, 관계를 여는 초기 버튼이다.
  • 소규모 모임 주도하기. 산책, 반려동물 산책, 책 나눔회—주체적으로 시작하면 작은 친구 관계가 퍼져간다.
  • 디지털 접점 열기. 동네 단체 운영 SNS, 채팅방, 줌 모임에 참여해 비대면도 동네 관계의 다른 면이 된다.

 


실제 사례도 많다. 한 지역 도서 모임 참가자는 “책을 함께 읽다 보니 자연스레 이웃과 반찬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라고 전한다. 또, 마을 텃밭을 함께 가꾸던 퇴직자들은 계절마다 농작물을 나누며 ‘삶의 동료’를 얻었다고 말한다. 작지만 깊은 관계의 시작은 ‘공유할 만한 즐거운 일’과 ‘소소한 만남’에서 비롯된다.

 

정년 이후 삶은 ‘멀리 있는 친구 찾기’가 아닌, ‘지역을 중심으로 관계를 재편하는 시간’이다. “편한 사람만 만나도 된다”는 습관에 갇힐수록 고립의 그늘이 짙어진다. 그러니, 동네(지역)라는 일상의 무대에 웃음과 이름, 대화로 관계의 장을 다시 세워야 한다. 작은 실천의 반복이 결국 든든한 노후의 안전망이 된다.

 

이름을 불러줄 때 관계는 살아나고, 손을 내밀 때 동네는 친구가 된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전하듯, “결국 서로가 있어 견디는 것”이 삶의 진실이며, 영화 〈미나리〉가 속삭이듯 “뿌리가 있으면 어디서든 살아간다.” 퇴직 이후 우리의 뿌리는 곁의 사람들 속에서, 그리고 동네라는 토양 속에서 더욱 깊게 자라난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기관, 중앙부처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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