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기강 해이는 곧 국민 생명 위협이다 |김한준 박사의 공직자 인생설계 #1

허위보고와 외유 정치, 그 책임을 묻다


벼슬은 단지 권력이 아니라, 그 위에 얹힌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무거운 짐이다. 그런데 최근 산청의 허위 보고부터 구리시장의 외유 논란까지 여러 사건은 공직기강 해이에 따른 국민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재명 대통령이 산청 시천면의 산불·폭우 피해 현장을 방문해 “산불 지역에 산사태가 없었는가?”라며 세 차례나 확인했음에도, 정영철 산청 부군수는 “피해 없다”, “문제 없다”라고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파손된 창고, 덮친 감나무 농장, 민가 10m까지 흘러든 토사와 나무, 양봉·곶감 농장의 피해는 명확했다. 주민들은 대통령 앞에서 “여기 산사태가 없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눈도 귀도 생각도 없는 사람”이라며 분노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닌, 공공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현장 외면’이었다.

 

국민의 안전은 한순간의 허위 보고로 무너질 수 있다. 산사태는 눈에 보이지 않던 위험이었는데, 공직자의 생략 보고로 인해 대응이 늦어지거나 잘못된 정책 방향이 세워질 가능성이 생긴다. 이 경우 행정은 선제적 대응이 아닌 사후 수습에 머물고,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에게 전가된다.

 

그나마 이 문제가 공식적으로 드러나고, 대통령의 경고와 함께 총리 지시까지 내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이 죽어가는 그 와중에 음주 가무를 즐기는 정신 나간 공직자들”이라고 강하게 질타했고, 김민석 국무총리는 세종시와 구리시 등 비상 상황 중 부재 및 외유가 발생한 지자체에 대해 전수 점검을 지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일시적 경고에 불과하며, 도덕이 아니라 제도적 기강 자체가 무너졌을 때 국민의 안전은 장기적으로 위협받는다.

 

구리시장 사례야말로 상징적이다. 비상근무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야유회 참석과 음주 행위는 ‘공직자의 껍데기’만 남은 공백 행정을 보여준다. 국민이 죽음과 피해 속에서 전력 대응을 요구하는 비상 상황에 지도자가 자리를 비우는 것은 배임과 다르지 않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행정 실패, 인사전횡, 도덕적 비위가 있음에도 상당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선거를 통해 재신임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지역에선 공무원 채용 비리, 측근 편중 인사, 심지어 음주운전 전과나 배임 혐의가 언론에 보도됐음에도, 결국 ‘개인적 친분’이나 ‘이익 분배의 논리’에 의해 다시 선출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행정은 주민의 삶을 다루는 일이다. 그러기에 행정의 실패는 단순한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주민의 권리 침해다. 시민이 외면하거나 묵인할 때, 기강 해이는 다시 제도화되고, 피해는 일상이 된다.

 

지금 목격한 문제는 단순한 누락이나 외유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공직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윤리·책임성이 붕괴됐다는 경고다. 공직자는 선출되거나 임명되는 순간, 국민의 생명과 공공의 신뢰를 등에 업게 된다. 그 신뢰가 무너질 때, 재난은 단지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배신의 문제로 바뀐다.

 

따라서 몇 가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첫째, 재난 현장에 대한 축소·은폐 보고는 즉시 징계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둘째, 비상 상황 중 지자체장의 외유 금지와 이탈 시 자동 직무 정지 조치를 법제화해야 한다. 셋째, 모든 재난 보고는 시간·주체·내용이 공개되는 실시간 시스템으로 관리돼야 한다. 정보의 빛 아래서만 공직의 무책임은 바로잡을 수 있다.

 

정조는 “벼슬은 곧 백성을 등에 업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 공직은 권력이 아니라 책임을 짊어지는 자리다. 그런데 그 책임을 외면하고 자리를 비우거나 허위 보고를 반복한다면,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 된다.

 

곧 다가올 2026년 지방선거는 단순한 선택이 아닌, 공직 책임의 심판대가 되어야 한다. 단체장의 권력 남용과 무책임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유권자의 침묵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뜻한다. 공직을 권력으로만 여긴 자, 주민이 아닌 자기 생존을 위해 공직을 이용한 자는 다시는 주민의 이름으로 선택돼선 안 된다. 허위보고와 외유 정치, 무책임한 인사 전횡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투표는 그 시작이자, 변화의 가장 강력한 도구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