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의 포커스】 예보 없이 묵념하는 나라

재난 위기관리, 예방설계로 전환하라

 

매년 우리는 익숙한 장면을 반복한다. 재난이 발생하고, 관계자는 현장을 방문해 유가족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며, 정부는 범정부 회의를 소집한다. 언론은 “예고된 인재였다”는 헤드라인을 내보내고, 지자체는 “사전 대응을 강화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비슷한 구조, 유사한 양상의 사고를 마주하게 된다. 2022년 이태원 참사,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침수, 그리고 2025년 7월 오산 옹벽 붕괴까지. 위험은 이미 경고됐고, 대응할 시간도 있었지만, 행정은 반응하지 않았다.
 

 

이번 오산 옹벽 붕괴사고는 민간인의 신고와 경찰의 침하 통보가 모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담당 공무원이 “현장 특이사항 없음”이라는 단 한 줄로 대응을 마쳤고, 그 몇 시간 뒤 시민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단순한 구조물 사고가 아니라, 이 나라 행정이 여전히 ‘사고 이후 대응’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드러낸 사건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조치하는 ‘예방 설계 행정’이 부재하다. 시스템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위기를 인식하고 작동시키는 태도와 구조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많은 지자체가 재난 CCTV, 기상 관측 시스템, 예경보 장비 등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장비를 운용하고 판단하는 조직과 사람이 이를 무력화한다면, 아무리 정교한 기술도 소용없다. 행정은 여전히 수동적이며, 위험을 읽지 못하거나 무시한다. 국민의 생명을 다룰 위기관리조차 매뉴얼을 위한 보고로 전락한 채, 실질적인 선제 대응은 부재한 상태다.

 

위기관리란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적 사고방식이다. 경고가 주어졌을 때 이를 통합적으로 판단하고, 지체 없이 실행하며, 그 판단의 이력과 책임이 분명히 남아야 한다. 지금처럼 “나는 몰랐다”는 말로 모든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구조에선 어떤 경고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예보는 있었지만 조치는 없었던, 반복된 인재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해외는 이미 예방설계 기반의 대응 체계로 전환을 마쳤다. 일본 고베시는 1995년 한신 대지진 이후, 내진 설계와 방재 매뉴얼을 도시 단위로 재구성했고, 이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고베 지역은 인명 피해가 거의 없었다. 네덜란드는 해수면 상승과 침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 트윈 기반 ‘디지털 댐’ 프로젝트를 시행하며, 실시간 시뮬레이션을 통해 침수 전 자동 조치를 취한다. 이들 사례는 기술보다 사람이 실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변화다.
 

이제 대한민국도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지역별 위험정보와 민원, 기상 데이터를 통합해 AI 기반의 예측행정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민원이나 경찰 보고가 접수되면 자동으로 관련 부서와 상황실에 연동되는 위험신호 통합 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셋째, 조치 여부와 판단 이력이 기록되는 이력 추적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위기경보를 무시하거나 방치한 책임자에 대한 실질적 문책과 인사상 불이익이 보장되는 구조다. 지금은 보고 중심 행정이 아니라 실행 책임 행정으로 바뀌어야 할 때다.

 

필자는 수차례 칼럼을 통해 강조해 왔다. 재난의 원인은 천재보다 인재에 있고, 반복된 재해는 결국 ‘사람’의 문제임을. 시스템이 살아 있으려면, 그것을 작동시키는 사람도 살아 있어야 한다. 행정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매번 고개 숙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말하지만, 그 고개를 드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방관이다.


공자는 “군자는 책임을 두려워하고, 소인은 책임을 피한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는 어느 쪽인가. 이제는 묵념으로 위기관리의 책임을 대체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예보 행정이 아닌, 예측 행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측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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