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시(자작시 포함)를 보내주시면 소중하게 보도를 하겠습니다. 시인의 등단 여부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편집국
할머니와 눈먼 개
- 김세희
기역 자로 구부러진 할머니 등에
갈색 개 한 마리
어린애처럼 업혀 있다
할머니가 설거지할 때
집을 청소할 때
장에 나갈 적에도 업고 나간다
가끔 바닷가 높은 바위에 올라
"이게 갈매기 소리야, 들리제?"
"이게 파도 소리야, 들리제?"
바다 구경도 시켜 준다
할머니가 등에서
바닥에 내려놓으면
조금 가다 광! 저리 가다 쾅!
쓸쓸한 할머니 곁에
앞 못 보는 개가 있어 주고
눈이 먼 개의 곁을
머리 센 할머니가 지켜 준다
눈을 고쳐 주려고 병원에 간 날,
약도 없다는 의사 선생님 말에
할머니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고,
앞 못 보는 개는 어떻게 알고서
혀를 돌돌돌 말며
할머니 눈가를 핧는다
※동시를 처음 접하는 필자로서는 동시란 '어린이 눈높이에서 쓰고 읽는 시'라는 막연한 생각만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달 선물로 받은 김세희 시인의 '비밀의 크기'를 최근에 읽으면서 동시와 '동시가 아닌 시'의 경계가 확연해 졌습니다. 동시란 성인이 된 시인이 동심으로 돌아가 어린아이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시이면서, 동심을 찾고 싶은 성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본문을 보면 등이 굽은 독거노인 할머니와 눈이 먼 개가 동거를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눈이 먼 개를 고쳐주려고 병원을 찾았지만, 약도 없다는 말에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그 눈물을 눈먼 개가 몇 안 되는 애정 표현인 혀를 사용해 닦아 줍니다. 많이 슬픈 이야기지만, 할머니의 굽은 등도 수술 등을 통해서 곧게 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필자로서는 보지 못하는 개와 할머니의 굽은 등이 자꾸만 오버랩되며 더욱 안타깝게만 다가옵니다. 관심과 배려가 사랑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 둘이 빠진 사랑은 있을 수 없으니깐요/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