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조위식 명창] '다산 아리랑'을 만들고 노래하는 참 소리꾼 조위식 명창

 

 

 

[정도일보 김현섭 기자] 흔히들 트로트를 우리나라 전통가요라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트로트는 구한말 서양에서 들어온 서양음악(西洋音樂), 즉 양악(洋樂)이다. 그리고 트로트가 대중에게 전파되기 전 우리 백성들은 소리꾼들의 창과 가락인 국악을 듣고 부르며 삶의 애환을 달랬었다. 

 

조위식 명창(61세)은 서울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 율창' 수석 이수자로 전통 가락을 공부한 소리꾼이다. 또한 국가무형문화재 제 57호 경기민요와 황해도무형문화재 제 3호를 전수 및 이수받았다. 흔히들 전수자와 이수자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데, 전수자는 스승의 유산 중 한 부분을 배운 것이고, 이수자는 스승의 유산을 모두 배워 갈무리한 제자를 말한다. 서울무형문화재 제41호 수석 이수자 조위식 명창을 만나 최근 '다산 아리랑'을 작사/작곡하고 노래를 하게 된 배경과 그의 결토 평탄하지 않았던 지난 삶을 들어보았다/편집자 주    

 

▲만나서 반갑다. 먼저 어떻게 창을 접하고 소리꾼의 길에 들어섰는지 궁금하다.

"초등학교때부터 국악이 좋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말을 엄청 더듬었었다. 성년이 되어서도 말더듬는 버릇은 전혀 고쳐지지가 않았는데, 군대에서도 보고체계가 잘되지 않아 힘든 군생활을 보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려서부터 국악을 듣고 따라부르면 말더듬는 버릇이 전혀 나오지 않고 소리를 곧잘 한다는 칭찬을 받았었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던 어느날, '내가 좋아하는 창'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무엇보다 이원겸 선생님께서 제 소리와 열정을 보고 물심양면으로 이끌어주셨기에 더욱 열심히 공부 할수있었고, 유창 스승님이 운영하시던 종로의 확원에서 체계화된 소리를 배웠다. 배움의 열망 앞에서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장애가 아니었다. 그렇게 창을 배우고 밤낮 없이 연습하는 과정에서 거짓말처럼 말더듬는 버릇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지금은 행사장 등에서 사회를 보고, 재능기부로 수강생들에게 국악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 율창'이 생소하다.
"내가 이수한 송서 율창은 크게 인기가 없다. 선비들이 향교나 서당에서 글 읽는 소리라고 이해를 하면 된다. 하지만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무척 좋아 하신다. 모든 장르의 음악이 그렇듯이 모든 곡에는 곡 해석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송서의 완성을 위해서는 소리를 내기 전에 한자로 쓰고 뜻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도 200여곡의 국악을 암기하고 가르치고 있다. 유창 스승님께 소리를 배우고 최단기 수석 이수자가 된 후, 15년 이상 소리만 파고 팠다. 송서 율창 계보는 이문원 명창, 묵계월 명창, 유창 명창, 그리고 저 조위식 명창으로 면면이 이러지고 있다."

 

▲다산 아리랑을 작사 작곡 했다. 어떤 내용인가? 
"나는 인창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우리집 주소가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 336번지였었다. 구리에서 태어났지만 남양주시 동화중학교와 금곡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처가댁도 마석이고 보니, 누가 뭐래도 나의 본향은 구리남양주 양주벌판이다. 지금은 직장따라 포천 20분거리에 거주하고 있다. 올 해 88세된 아버님을 한 달에 한번 나들이를 다니는데, 가끔은 공연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아버님은 현재도 국악을 흥얼흥얼 대신다. 아버님 소리를 듣던 중, 문득 나의 고향인 남양주시를 기념하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산아리랑은 퓨전 국악으로 굿거리 장단에 영상을 입힌 것으로 남양주시에는 축령산, 천마산, 다산 유적지, 홍릉과 유릉, 광릉과 사릉, 운길산, 봉선사 등 역사적인 명소가 많다. 어릴 적 추억이 가득한 이 곳들을 가사로 쓰고 곡을 입히며 영상으로 담으면서 무척 설레고 기뻤다.    

 

 

▲향후 계획은?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소리꾼으로서 어렵게 강을 건넜다. 이제는 돌아갈 힘도 없다.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앞으로 다산아리랑 연구보존회 등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후배 양성을 하고 싶다. 나의 경우에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처럼 수강생분들을 가르치면서 배움을 멈추지 않으며 조금씩 더 성장하게 된다. 지금도 국악소리의 장르 200여곡을 암기하고 레슨 때는 교재없이 진행하고 있다. 

 

또한 나의 본향인 냠양주시를 위해서 공헌하고 봉사하며 지내고 싶다. 나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나는 돈이나 명예를 좇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다산 아리랑'이 남양주시민들의 마음을 보듬고,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고향을 떠난 분들이 고향 남양주를 떠올리며 듣는 곡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다산 아리랑이 남양주시의 자산이 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최근에는 트로트가 대세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뿌리를 찾으려면 최소한 자신이 사는 지역의 아리랑을 들으면서 애향심을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전통 국악은 대한민국의 가락이며 뿌리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 가슴에 와닿는 노래가 국악이다. 어르신들에게 국악 강의를 하다보면 어린아이처럼 너무너무 좋아하시는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많은 분들이 다산 아리랑을 듣고 추억하며 행복해 하셨으면 좋겠다.

 

말더듬이로 고생을 했던 제가 지금은 서울문화예술진흥협회 기획이사로 행사 진행까지 하고 있다. 정말 거짓말 같은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저는 죽을 때까지 소리꾼으로서 저와 인연이 깊은 남양주/구리/포천/연천 이 네 곳의 시민들과 어울리며 공연과 봉사활동, 후배 양성을 하며 지내고 싶다.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도시에서 만큼은 우리나라의 전통 소리를 발전계승하는것이 소박한 나의 소망이자 꿈이다.

 

조위식 명창은 현재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를 송서로 만드는 과정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시가 돈이 돼냐?" "국악을 배워 어떻게 먹고 살려고?" 등등의 세속적 이야기들이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는 내내 필자의 귀에 어른 거렸다. 어쩌면 국내외 모든 국악인들을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는 방법은 국악이 돈이 되는 사회적, 문화적 구조 만들기가 아닐까? 조위식 명창의 앞날에 기쁨과 활력이 충만하길 기도하면서 글을 마친다/편집자 주 

 

 

 

 


포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