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박병문 사진전- 폐광, 시간이 멈춘 아버지의 기억들(4/2~4/25)

태백 출신으로 부산에서 개인전을 여는 작가

 

[정도일보 안준희 기자] 두 개의 선로, 두 개의 갱구가 있다. 그리고 갱내에서도 검은 탄맥을 따라 두 개의 동굴이 있다. 하나는 반쯤 막혀 있고 하나는 광차의 선로가 들어가고 있다. 이 반복되는 두 개의 길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길로 들어오라고 초대하는 듯하다. 그것도 동시에 말이다. 마치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통과하는 양자물리학의 전자처럼. 박병문의 시선에는 묘한 이중성이 감추어지고 드러나면서 교차하고 있다. 막혀 있으면서도 열린 선로를 따라서.

 


 기록은 폐광이다. 삶이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고 흔적이 기록된다. 박병문의 카메라는 기록이다. 폐광을 찾아가는 사진에는 사람이 없다. 그곳은 삶이 지나간 자리다. 삶의 시선은 사라지고 기록하는 시선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풍경들이다. 쓰레기 더미들이 뒹굴고 있는 사무실을 아무런 수식 없이 비추고 있는 거울이 그의 파인더이다. 그러나 이미지는 의도된 기획이나 기록의 언어를 초과하기 일쑤다. 의도치 않게 이미지에 개입하는 거울에 새겨진 문자나 얼룩처럼 말이다. 폐허와 눕혀진 문자 “축 발전”, 이 기묘하고 느닷없는 만남을 보라. 우리는 이미 두 개의 갱구를 동시에 지나가고 있다.

 

 

 첫 번째 갱구: 박병문의 풍경을 이루는 시선은 기록과 기억의 시선이다. 이 시선을 지배하는 것은 광부였던 아버지의 흔적이며, 아버지의 언어이다. 이 언어에는 산업화 과정의 역사가 음화로 새겨져 있다. 산업혁명은 석탄에너지로부터 시작되었다. 탄광은 산업화의 장엄한 심장이었지만 그러나 가장 깊이 감추어진 밀실이기도 했다. 상처 딱지 같은 녹슨 시간의 앙금이 내려앉아 있는 곳, 박병문의 사진은 이 감추어진 것에 대한 답사이고 기록이다.

 

 그는 미학적인 클로즈업이나 관조하는 망원의 시점이 아니라 답사하는 도보 속도와 적절한 거리에서 폐광의 풍경들을 본다. 한 시대의 뜨거운 에너지, 노동의 혹독함, 소망과 절망이 뒤섞인 파편들이 프레임의 언저리를 떠돈다. 우리는 풍문 같은 뉴스, 몇 편의 보고서와 소설 등을 남겼을 뿐 그 산업화의 심장이 어떻게 박동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식어갔는지, 그때 그곳에 무엇이 스쳐갔는지, 우리는 아직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폐광을 기록하는 박병문의 집요한 시선이 가지는 소중한 의의가 여기에 있다.

 


박병문의 시선은 기록자의 시선이고자 하지만 문득 대상을 더듬는 촉감을 띠기도 한다. 흉물스럽게 파괴된 샤워장이나 2006년의 달력과 광부들의 옷들이 걸려 있는 모서리, 사람들이 떠난 아파트의 황량한 내부, 버려진 광차의 바퀴 등에서 그는 시각의 거리를 잊고 대상을 촉감으로 더듬고자 하는 듯하다. 그의 눈과 대상 사이에 거울이 사라진다. 그 촉감적 시선은 기록이 아니라 체험의 욕망을 갖는다.

 

 아버지를 체험해보고 싶은 욕망이었을까. 체험의 욕망은 기록을 추억으로 바꾸기도 한다. 그의 시선은 기록과 추억 사이에서 떠돈다. 선로 위에 녹이 슨 채 멈춘 광차는 과거의 움직임과 소음을 품은 채 현재의 부동성과 정적 속에 던져져 있다. 그의 눈은 이 정적 속에 잠들어 있는 그때의 소란을 조용히 쓰다듬는다. 그 촉감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난다. 아, 촉감적 시선은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를.

 


 두 번째 갱구: 다른 갱구가 있다. 거울에 의도치 않게 개입하는 문자나 얼룩처럼, 그의 시선은 의도된 기록을 위한 갱구와 동시에 (아마 의도치 않게) 다른 갱구로도 스며든다. 갱도, 아니 동굴로 들어가는 것은 실상 무의식의 심연이거나 혹은 그것이 투사된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고 적혀 있는, 한 시대의 삶을 압축하고 있는 생생한 발언의 갱구를 지나서 그는 모든 발언이 모호해지는 상징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보면 검은 폐석장 가운데 선 흰색의 교회 역시 신화적이지 않은가.)

 

 그의 시선은 현실과 신화가 만나는 자리에 솟은 고드름과 종유석 같은 신비로운 상징들을 지나서 마침내 막장에 이른다. 아버지의 언어가 끝나는 곳이다. 어둠과 적막, 이곳은 무덤이자 모태이다. 신화의 ‘죽음-재생’이 일어나는 곳, 모든 길이 끝나는 곳, 모든 발언이 침묵하는 곳, 그리고 여기에서 그의 사진이 다시 시작되기를!

 


 "거대한 태백산을 휘감은 바람이 검은 땅 검은 기슭에 둥지를 틀었다. 삐걱거리며 덜컹 거렸던 광차는 숨죽인 바람으로 아버지의 발길따라 갱도를 수없이 드나들었을 것이다. 무색한 시간은 막다른 끝에서 정적을 품은 체 숨을 고르다 묵직하게 눌러 앉았다. 여기저기 막무가내로 널브러진 쇳덩이들은 주소 잃은 우편물마냥 널려있다. 광부의 애간장이 입김 속으로 녹아들고 동토 속 겨울의 검은 세상으로 뱉어지며 타는 속을 렌즈 속에 담았다" -박병문 작가 

 


 "옹골진 세월을 견딘 아버지의 손을 잡고 폐광의 잔해사이를 회상의 걸음으로  걸었다. 흰머리가 햇살에 부딛혀 바람에 날리는 순간도 아버지의 시선은 광차를 향했다. 많은 사건이 광차에 얽히고 그것이 아버지의 생애가 되었던 것이다.  탄벽의 검은 땀방울로 가정을 지키셨고 무던한 광차속에 평생을 보내신 아버지, 갱차에 그리다 새겨 둔 채탄의 흔적들은 아버지의 세월과 동행을 하고 있다. 석양이 지듯 조용히 역사를 남기는 폐광의 언저리는 따스함으로 기억 될 것이다." -박병문 작가

 

 

강원도 태백 출신의 박병문 사진작가가 오는 4월2일부터 25일까지 부산 아트스페이스 '이신 갤러리'에서 '폐광, 시간이 멈춘 아버지의 기억들' 사진전을 가진다. 박병문 작가는 강원도 태백 출신으로 광부였던 아버지의 흔적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여정을 보냈다.


현재 우리나라는 1988년 석탄산업합리화에 따라 지금은 몇개의 탄광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화와 경제 발전의 초석이자 서민들의 주된 연료였던 석탄은 이제 시대적 요구에 따라 냉대 받고 홀대 받으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하지만 광부인 아버지의 흔적을 쫓아 영욕의 현장을 기록에 남기기 위한 박병문 작가의 광부 아버지의 삶과 숨결, 그리고 기억과 추억에 대한 소중한 시간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을 믿는다.  

 

박병문(朴炳文) - Park Byung Moon 사진작가는/

 

- 강원 태백 출생
- 강원관광대학교 산업경영학과
- 온빛 다큐멘터리 회원
- 비주류 사진관 회원
- 2010년 제24회 강원도 사진대전 대상 수상
- 2013년 제1회 최민식 사진상 특별상 대상 수상
- 2016년 제6회 온빛 타큐멘타리 사진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