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詩] 나는 집으로 간다 / 여림
※정도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시(자작시 포함)를 보내주시면 소중하게 보도를 하겠습니다. 시인의 등단 여부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편집국 나는 집으로 간다 -여림 몇 번이나 주저앉았는지 모른다 햇살에도 걸리고 횡단보도 신호등에도 걸려 자잘한 잡품들을 길거리에 늘어놓고 초라한 눈빛으로 행인들을 응시하는 잡상인처럼 나는 무릎을 포개고 앉아 견뎌온 생애와 버텨가야 할 생계를 간단없이 생각했다 해가 지고 구름이 떠오르고 이윽고 밥풀처럼 입술 주위로 묻어나던 싸라기눈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나는 석유 난로 그을음 자욱한 포장마차에 앉아 가락국수 한 그릇을 반찬 삼은 저녁을 먹는다 둘러보면 모두들 살붙이 같고 피붙이인 사람들 포장 틈새로 스며드는 살바람에 찬 손 가득 깨진 유리병 같은 소주 몇 잔을 털어 넣고 구겨진 지폐처럼 등이 굽어 돌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오랜 친구처럼 한두 마디 인사라도 허물없이 건네고 싶어진다 포장을 걷으면 환하고 따뜻한 길 좀 전에 내린 것은 눈이 아니라 별이었구나 옷자락에 묻어나는 별들의 사금파리 멀리 집의 불빛이 소혹성처럼 둥글다 ※시인 여림(1967~2002)은 등단 3년 만에 요절을 했다. 본명이 여영진인 여림은 스승 최하림 시인을 존경한 나머지 그분의 이름 끝자를 따 필명을 여림으로 지었다고 한다.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하고,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등단했지만 변변한 시집 한 권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인의 1주기에 지인들이 그의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시 100여 편을 담아 펴낸 시집이 '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이다. .이후 2016년 5월에 미발표 시와 함께 메모, 수필, 편지 등 산문도 여러 편 실린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이 발간됐다. '깨진 유리병 같은 소주 몇 잔을 털어 넣고 / 구겨진 지폐처럼 등이 굽어 돌아가는'라는 생전 시인의 삶과 '나는 무릎을 포개고 앉아 견뎌온 생애와 / 버텨가야 할 생계를 간단없이 생각했다'처럼 현재 이 시를 읽는 필자의 삶이 오버랩 되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의 흔적은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의 삶을 위로해주는 힘이 있다. 그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겠다/김현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