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7장은 요셉 지파의 므낫세 자손이 기업으로 받은 땅의 소개 및 이들이 기업 분배에 불만을 갖고 더 많은 기업의 땅을 요구하는 장면이다. [서쪽 므낫세 자손의 기업] 1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 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였고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버지라 그는 용사였기 때문에 길르앗과 바산을 받았으므로 2 므낫세의 남은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는데 그들은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 헬렉의 자손과 아스리엘의 자손과 세겜의 자손과 헤벨의 자손과 스미다의 자손이니 그들의 가족대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남자 자손들이며 3 헤벨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요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4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 하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에게 그들의 아버지 형제들 중에서 기업을 주므로 5 요단 동쪽 길르앗과 바산 외에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6 므낫세의 여자 자손들이 그의 남자 자손들 중에서 기업을
[이상수 칼럼] 형틀이 거룩한 상징이 되기까지 성당이나 교회 건물 신도의 목에 걸고 있는 십자가는 참 묘한 물건이다. 본래는 거룩함과 가장 먼 곳에 있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죄인과 반역자를 매달아 죽이던 사형 도구였다. 인간의 수치와 고통, 죽음을 의미하던 형틀이 오늘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신앙의 상징이 되었다. 죽음의 도구가 생명의 표지가 된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은 자랑할 만한 표지가 아니었다. 박해받던 그들은 물고기나 닻 같은 상징으로 신앙을 표현했다. 그러나 박해의 시대가 지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신앙이 확산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형틀은 희생과 사랑, 구원과 부활을 상징하는 표지가 되었다. 형틀의 나무가 달라진 것이 아니다. 그 나무에 담긴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바로 여기에 종교의 힘이 있다. 고난을 기억하는가, 부활을 바라보는가 가톨릭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십자가상에는 고난받는 예수의 모습이 있다. 반면 개신교회에서는 예수의 형상이 없는 빈 십자가를 자주 볼 수 있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신앙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차이는 복음의 서로 다른 면을 강조하는 데서 비롯된다. 고난의 십자가상은
여호수아 16장은 요셉 지파의 에브라임 자손이 기업을 분배받는 장면이다. [에브라임과 서쪽 므낫세 자손의 기업] 1 요셉 자손이 제비 뽑은 것은 여리고 샘 동쪽 곧 여리고 곁 요단으로부터 광야로 들어가 여리고로부터 벧엘 산지로 올라가고 2 벧엘에서부터 루스로 나아가 아렉 족속의 경계를 지나 아다롯에 이르고 3 서쪽으로 내려가서 야블렛 족속의 경계와 아래 벧호론과 게셀에까지 이르고 그 끝은 바다라 4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들의 기업을 받았더라 [에브라임 자손의 기업] 5 ○에브라임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지역은 이러하니라 그들의 기업의 경계는 동쪽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윗 벧호론에 이르고 6 또 서쪽으로 나아가 북쪽 믹므다에 이르고 동쪽으로 돌아 다아낫 실로에 이르러 야노아 동쪽을 지나고 7 야노아에서부터 아다롯과 나아라로 내려가 여리고를 만나서 요단으로 나아가고 8 또 답부아에서부터 서쪽으로 지나서 가나 시내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 이러하였고 9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분한 모든 성읍과 그 마을들도 있었더라 10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여호수아 15장에서는 요단 서편에서 가장 먼저 추첨받은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넓은 기업의 땅과 많은 성읍들이 소개된다. 이어 갈렙에게 분배된 기업도 소개된다. [유다 자손의 땅] 1 또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 뽑은 땅의 남쪽으로는 에돔 경계에 이르고 또 남쪽 끝은 신 광야까지라 2 또 그들의 남쪽 경계는 염해의 끝 곧 남향한 해만에서부터 3 아그랍빔 비탈 남쪽으로 지나 신에 이르고 가데스 바네아 남쪽으로 올라가서 헤스론을 지나며 아달로 올라가서 돌이켜 갈가에 이르고 4 거기서 아스몬에 이르러 애굽 시내로 나아가 바다에 이르러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것이 너희 남쪽 경계가 되리라 5 그 동쪽 경계는 염해이니 요단 끝까지요 그 북쪽 경계는 요단 끝에 있는 해만에서부터 6 벧 호글라로 올라가서 벧 아라바 북쪽을 지나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에 이르고 7 또 아골 골짜기에서부터 드빌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서 그 강 남쪽에 있는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길갈을 향하고 나아가 엔 세메스 물들을 지나 엔로겔에 이르며 8 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올라가서 여부스 곧 예루살렘 남쪽 어깨에 이르며 또 힌놈의 골짜기 앞 서쪽에 있는 산 꼭대기로 올라가나니 이곳은 르
[이상수 칼럼] 사람은 평생 ‘나’를 찾아 살아간다. 돈을 벌고, 공부하고, 명예를 얻고, 사람을 만나면서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한다. 그러나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채 후회라는 이름으로 한평생을 보내기도 한다.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살아간다. 몸은 먹고 움직이며 성장하고, 마음은 생각하고 느끼며 성숙한다. 몸이 건강하려면 좋은 음식과 운동이 필요하듯 마음의 성장에도 좋은 양식이 필요하다. 그 양식은 진리이며, 정직과 사랑, 배려와 용서, 책임과 양심은 그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게 하는 마음의 힘이다. 문제는 마음과 행동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 때 시작된다.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미워하고, 옳은 일을 알아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의를 선택한다. 인간의 가장 큰 싸움은 어쩌면 세상과의 싸움보다 자기 안에서 벌어지는 마음의 싸움인지 모른다. 몸보다 먼저 마음을 돌아보라 몸은 원하는 것을 얻으면 만족한다.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잠, 좋은 물건이 기쁨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마음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마음에는 마음을 성숙시키는 철듦이라는 양식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헤아리고,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하
여호수아 14장에서는 요단 서편의 땅이 분배된다. 땅이 분배되기 전에 땅 분배의 원칙이 먼저 소개되고, 이어 갈렙이 이전에 모세로부터 약속받은 헤브론 땅을 자신의 기업으로 요청한다. [요단 서쪽 기업의 분배] 1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3 이는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주었음이요 레위 자손에게는 그들 가운데에서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요셉의 자손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다만 거주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산을 위한 목초지만 주었으니 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이 행하여 그 땅을 나누었더라 [갈렙이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다] 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
[이상수 칼럼]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일까.” 살다 보면 문득 이런 탄식이 흘러나온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때로는 살아온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러나 인생에는 리허설이 없다. 재방송도 없다. 오직 한 번뿐인 본방송이다. 지나간 장면을 되돌려 다시 찍을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인생길은 일방통행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지나간 길에 주저앉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다. 어제에 묶이면 오늘을 잃는다 누구에게나 삶의 무게는 있다. 남의 인생은 가벼워 보이고 내 인생만 유난히 무거워 보일 때가 있지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웃는 사람에게도 말 못 할 눈물이 있고, 성공한 사람에게도 견뎌야 할 밤이 있다. 힘든 순간 “나만 왜 이럴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생각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제의 상처가 오늘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지금의 삶이 아무리 고단해도 내일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 다시 일어설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다. 오늘이 있다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호수아 13장에서는 가나안 땅을 각 지파에게 분배하는 일이 소개된다. 먼저 아직껏 정복되지 못한 지역들이 열거된 후에 과거 요단 동편의 땅을 두 지파 반에게 분배한 사실이 소개됐다. [정복하지 못한 지역] 1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2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모든 지역과 그술 족속의 모든 지역 3 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쪽 에그론 경계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통치자들의 땅 곧 가사 족속과 아스돗 족속과 아스글론 족속과 가드 족속과 에그론 족속과 또 남쪽 아위 족속의 땅과 4 또 가나안 족속의 모든 땅과 시돈 사람에게 속한 므아라와 아모리 족속의 경계 아벡까지와 5 또 그발 족속의 땅과 해 뜨는 곳의 온 레바논 곧 헤르몬 산 아래 바알갓에서부터 하맛에 들어가는 곳까지와 6 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 산지의 모든 주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내가 명령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7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
[이상수 칼럼] 삶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서 세상의 모든 말은 상대적이다. 이 말은 저 말을 견제하고, 저 말은 이 말을 염두에 두고 존재한다. 동서남북과 고저장단이 그렇고, 흥망성쇠와 생사화복이 또한 그러하다. 산다는 것 역시 죽음을 전제할 때 비로소 성립되는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이다. 들숨과 날숨이 어긋나 쉬지 못하면 저승이 바로 코앞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저승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은 이에게는 문턱 너머가 바로 저승일 뿐이다. 사람들은 몸에 좋은 음식에는 먼저 손이 가고, 해로운 음식은 멀리한다. 몸에 좋다고 하면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단순한 취향을 넘어, 생명 자체를 유지하고 지키는 직결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지닌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우리가 늘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갈 뿐, 우리의 삶은 언제나 사느냐 죽느냐 하는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놓여 있다. 몸을 좌우하는 마음의 생명 그렇다면 몸의 생명이 우리 삶의 전부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몸을 좌우하는 근본인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마음을 잊은 채 몸의 건강과 외형만 키우며 살아가고, 어떤 이는 몸
[이상수 칼럼] 갓끈을 낚아채는 도파민의 시대 스마트폰 화면을 켜는 순간, 우리는 매일같이 누군가의 '갓끈'을 찾아내어 뜯어발기는 가혹한 광풍을 목격한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 실수, 연예인의 과거 사생활, 기업인의 작은 착오나 타인의 연약한 허물은 찰나의 순간에 알고리즘을 타고 퍼져 전 국민적 단죄의 대상이 된다. 흠을 잡고, 파헤치고, 한 사람의 인격을 완전히 매장하는 데 온 사회가 가공할 만한 도파민을 분출하는 시대다. 누군가를 바로 세우기보다 끌어내리는 일에 더 열광하는 우리 사회의 성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갓끈'을 낚아채는 도파민의 정치와 캔슬 컬처 오늘날 한국 사회는 사법적 판단이나 이성적 검증에 앞서 대중적 단죄가 먼저 이루어지는 '사적 심판의 일상화' 속에 살고 있다. 사이버 렉카와 SNS는 타인의 인격적 치부를 상품화하고, 대중은 이에 열광한다. 상대방의 논리와 정책을 검증하는 성숙한 토론은 사라지고, 오직 상대의 약점과 실수를 찾아내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가 주류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정치권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국회와 정당은 국가의 미래를 논하는 정책의 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과거와 허물을 들춰내어
여호수아 9장은 이스라엘의 승승장구에 위협을 느낀 가나안 땅의 기브온 주민들이 생존의 자구책으로 위장 전략을 써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장로들을 속이고 화친 조약을 체결하는 장면이다.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를 속이다] 1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2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3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4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5 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6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니 7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조약을 맺을 수 있으랴 하나 8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매 여호수아가 그들
여호수아 8장에서는 범죄자 아간의 처형 이후, 여호수아 군대가 재차 공격을 시도해 아이 성을 함락시키는 장면이다. 이후 이스라엘은 과거 모세의 지시대로 예발 산에 제단을 쎃고 축복과 저주의 율법을 낭독한다. [아이 성을 점령하다]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2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 3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여 매복하되 그 성읍에서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준비하라 5 나와 나를 따르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올 것이라 그리 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6 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추격하며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이상수 칼럼] 유난히 숨이 턱 막히는 뜨거운 계절이다. 문을 나서자마자 밀려드는 열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인상을 찌푸리고, 뉴스 속보는 매일같이 연일 최고기온을 경신하는 폭염 경보를 전하기 바쁘다. 기후변화라는 과학적 진단 앞에서 우리는 이 지독한 더위를 단순히 지구가 아파서 생겨난 재난으로만 여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이 거대한 자연의 열기는 단순한 기상 현상을 넘어 우리 삶의 방식을 깊이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동양의 오랜 지혜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삶이 결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고 보았다.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거친 숨결은 곧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에게 던지는 커다란 질문이다. 올해는 전통적으로 '불'의 기운이 겹치는 특별한 해다. 하늘에도 불이 뜨고 땅에도 불이 가득한 시기라 불린다. 이 뜨거운 불은 만물을 키워내는 따뜻한 생명력이 될 수도 있고,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무서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이 뜨거움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축복이 되기도 하고, 삶을 무너뜨리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숨길 수 없는 진실의 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밝은 빛 아래 드러나기 마련이다. 어두운 곳에서는
여호수아 7장은 아이 성 전투의 실패와 그 원인이 기록된 장면이다. 아이 성 전투의 패배 원인은 아간의 범죄 때문으로 밝혀졌고, 그래서 요호수아는 아간을 처형함으로써 죄악을 제거한다. [아간의 범죄]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3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4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5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정도일보 김현섭 기자] 이계철 의장은 제10대 화성특례시의회 전반기 의장을 맡아 집행부 감시와 견제 그리고 조화와 협치를 강조하고 있다. 107만 특례시민의 대의기관을 이끄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졌음에도, 이 의장의 집무실은 딱딱한 권위의식 대신 언제나 찾아올 수 있는 편안함과 소탈한 미소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이계철 의장은 화성의 백년대계를 향한 치열한 고민과 함께, 시민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듣겠다는 진정성 어린 포부를 아낌없이 쏟아냈다. 지난 달 27일 새청사 5층 의장실에서 화성시지역신문협의회 공동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제10대 화성특례시의회 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소감과 함께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제10대 화성특례시의회 전반기 의장이라는 막중한 소임을 맡게 되어 큰 영광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먼저 저를 믿고 뜻을 모아주신 동료 의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시민 여러분께서 제10대 의회에 보내주시는 기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쁨보다 어떻게 의회를 책임 있게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 의장은 개인이 앞에 서는 자리가 아니라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