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가,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가

 

 

[기고문 / 이상수 목회학 박사] 

 

세상에는 두 부류의 리더가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믿으며 권위의 뒤에 숨는 이와, 스스로를 가꾸어 그 자리를 빛내는 이다. 흔히 직급과 지위가 인품을 보장해 줄 것이라 착각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사람이 자리보다 크면 그 자리는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지만, 사람보다 자리가 크면 그 지위는 결국 사람을 삼키고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독이 된다.

 

조직 사회에서 직급과 지위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앉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닌 ‘공인(公人)’으로서의 무한한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델이 바로 ‘부모의 심정’이다. 부모는 가정이라는 울울한 울타리 안에서 자녀를 위해 무한한 책임을 지며, 대가 없는 헌신으로 봉사하는 자리다. 어떤 부모도 미성숙한 자녀를 보며 우월감을 느끼거나 군림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녀의 부족함을 자신의 채우지 못한 몫으로 돌리며 그 성장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춘다.

 

자연의 섭리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나무의 순이 하늘을 향해 끝없이 뻗어 올라가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그만큼 더 깊고 척박한 땅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지도자의 위치란 바로 그 뿌리와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성과는 구성원과 시대의 몫으로 돌리고, 자신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하며 조직의 영양분이 되어야 한다. 나를 드러내기보다 타인의 가능성을 꽃피우기 위해 스스로 밑거름이 되는 태도, 이것이 모든 리더가 갖추어야 할 공적인 심정의 골격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떤가. 자리가 주는 달콤한 권위에 취해 본질을 잃어버리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특히 사회적 사표(師表)가 되어야 할 지도층이 내면의 성찰보다 외적인 대우와 물질, 직급의 높낮이에 매몰될 때 대중은 깊은 실망을 넘어 냉소에 빠진다. 가장 위험한 함정은 ‘자신의 인품보다 큰 자리’에서 대접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실력과 인격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받는 존경은 결국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다.

 

많은 이들이 사회적 가면으로서 ‘겸손’을 내세우지만, 이는 자칫 ‘교만한 겸손’이 되기 쉽다. 겉으로는 고개를 숙이지만 속으로는 선민의식에 가득 차 타인을 내려다보는 태도는 금세 탄로 나기 마련이다. 진정한 겸손은 철저한 자기 객관화와 부단한 마음 훈련에서 나온다. 나를 다스리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타인을 이끌 수 있겠는가. 나를 비우고 상대를 진심으로 높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직급의 높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수련을 통해 넓혀진 인격의 그릇에서 나온다.

 

우리는 흔히 일이 잘못되었을 때 ‘망했다’거나 ‘추락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모든 추락의 원인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정상의 위치에서 자기 관리에 소홀했거나, 자신의 그릇을 넘어서는 욕심을 부렸을 때 붕괴는 시작된다.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과한 섬김을 받으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된다. 자기에 도취하여 자신의 본분을 잊고 그릇의 크기를 착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올바른 사람이란 존경과 섬김을 받을수록 오히려 더 낮은 곳을 살피는 사람이다. 자리를 탓하기 전에 나의 그릇을 먼저 키워야 한다. 내가 높아지려 애쓰기보다 내가 머무는 자리를 통해 주변을 얼마나 더 높여주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위는 잠시 빌려 입은 옷과 같다. 시간이 흐르면 그 옷은 벗어야 하지만, 그 자리에 머물며 보여준 진정성과 인격의 향기는 영원히 남는 법이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내 이름 석 자보다 자리에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마음의 크기를 키우고 상대를 존중하는 여유를 갖출 때, 비로소 우리는 자리의 노예가 아닌 자리를 빛내는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