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칼럼] 사람은 평생 ‘나’를 찾아 살아간다. 돈을 벌고, 공부하고, 명예를 얻고, 사람을 만나면서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한다. 그러나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채 후회라는 이름으로 한평생을 보내기도 한다.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살아간다. 몸은 먹고 움직이며 성장하고, 마음은 생각하고 느끼며 성숙한다. 몸이 건강하려면 좋은 음식과 운동이 필요하듯 마음의 성장에도 좋은 양식이 필요하다. 그 양식은 진리이며, 정직과 사랑, 배려와 용서, 책임과 양심은 그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게 하는 마음의 힘이다. 문제는 마음과 행동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 때 시작된다.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미워하고, 옳은 일을 알아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의를 선택한다. 인간의 가장 큰 싸움은 어쩌면 세상과의 싸움보다 자기 안에서 벌어지는 마음의 싸움인지 모른다. 몸보다 먼저 마음을 돌아보라 몸은 원하는 것을 얻으면 만족한다.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잠, 좋은 물건이 기쁨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마음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마음에는 마음을 성숙시키는 철듦이라는 양식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헤아리고,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하
여호수아 14장에서는 요단 서편의 땅이 분배된다. 땅이 분배되기 전에 땅 분배의 원칙이 먼저 소개되고, 이어 갈렙이 이전에 모세로부터 약속받은 헤브론 땅을 자신의 기업으로 요청한다. [요단 서쪽 기업의 분배] 1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3 이는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주었음이요 레위 자손에게는 그들 가운데에서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요셉의 자손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다만 거주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산을 위한 목초지만 주었으니 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이 행하여 그 땅을 나누었더라 [갈렙이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다] 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
[이상수 칼럼]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일까.” 살다 보면 문득 이런 탄식이 흘러나온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때로는 살아온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러나 인생에는 리허설이 없다. 재방송도 없다. 오직 한 번뿐인 본방송이다. 지나간 장면을 되돌려 다시 찍을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인생길은 일방통행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지나간 길에 주저앉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다. 어제에 묶이면 오늘을 잃는다 누구에게나 삶의 무게는 있다. 남의 인생은 가벼워 보이고 내 인생만 유난히 무거워 보일 때가 있지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웃는 사람에게도 말 못 할 눈물이 있고, 성공한 사람에게도 견뎌야 할 밤이 있다. 힘든 순간 “나만 왜 이럴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생각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제의 상처가 오늘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지금의 삶이 아무리 고단해도 내일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 다시 일어설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다. 오늘이 있다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호수아 13장에서는 가나안 땅을 각 지파에게 분배하는 일이 소개된다. 먼저 아직껏 정복되지 못한 지역들이 열거된 후에 과거 요단 동편의 땅을 두 지파 반에게 분배한 사실이 소개됐다. [정복하지 못한 지역] 1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2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모든 지역과 그술 족속의 모든 지역 3 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쪽 에그론 경계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통치자들의 땅 곧 가사 족속과 아스돗 족속과 아스글론 족속과 가드 족속과 에그론 족속과 또 남쪽 아위 족속의 땅과 4 또 가나안 족속의 모든 땅과 시돈 사람에게 속한 므아라와 아모리 족속의 경계 아벡까지와 5 또 그발 족속의 땅과 해 뜨는 곳의 온 레바논 곧 헤르몬 산 아래 바알갓에서부터 하맛에 들어가는 곳까지와 6 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 산지의 모든 주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내가 명령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7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
※정도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시(자작시 포함)와 짧은 감상평을 보내주시면 소중하게 보도를 하겠습니다. 시인의 등단 여부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편집국 귀뚜라미 -김현섭 귀뚜라미가 고개를 쳐든다 가만히 보니 나를 닮았다 초저녁 이른 가을 귀뚜라미 서럽게 운다 이 아이는 뭐가 문제일까? 먼 길 떠나려는 나를 위해 밥상 아래서 울고 있나? 내 지나온 삶이 저 보다 못하다고 저리 슬피 울고 있나? 내 나이 늙는 것도 잊고 지나치게 무심히 세월을 보냈다 귀뚜라미 어디 있나? 사라졌다 ※삶은 유한합니다. 귀뚜라미 역시 짧은 시간을 생으로 지냅니다. 신문사 시절의 어느 초저녁 가을밤, 새로운 본사 사령을 받고 새벽 이사짐을 싸고 있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사람과의 술자리를 좋아하고 낙천적인 삶을 살다보니, 어느사이 세월만 축내고 있었구나 깨달았던 저녁이었습니다. 이후 가을밤 내내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었습니다.
[이상수 칼럼] 삶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서 세상의 모든 말은 상대적이다. 이 말은 저 말을 견제하고, 저 말은 이 말을 염두에 두고 존재한다. 동서남북과 고저장단이 그렇고, 흥망성쇠와 생사화복이 또한 그러하다. 산다는 것 역시 죽음을 전제할 때 비로소 성립되는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이다. 들숨과 날숨이 어긋나 쉬지 못하면 저승이 바로 코앞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저승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은 이에게는 문턱 너머가 바로 저승일 뿐이다. 사람들은 몸에 좋은 음식에는 먼저 손이 가고, 해로운 음식은 멀리한다. 몸에 좋다고 하면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단순한 취향을 넘어, 생명 자체를 유지하고 지키는 직결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지닌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우리가 늘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갈 뿐, 우리의 삶은 언제나 사느냐 죽느냐 하는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놓여 있다. 몸을 좌우하는 마음의 생명 그렇다면 몸의 생명이 우리 삶의 전부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몸을 좌우하는 근본인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마음을 잊은 채 몸의 건강과 외형만 키우며 살아가고, 어떤 이는 몸
여호수아 12장에서는 가나안 정복의 역사가 간략히 소개된다. 먼저 모세에 의해 정복된 요단 동편의 땅과 왕들이 소개되고, 이어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된 요단 서편의 땅과 왕들이 소개됐다. [모세가 정복한 왕들] 1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쪽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쪽 온 아라바를 차지하고 그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2 시혼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이라 그가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경계 얍복 강까지이며 3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이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쪽으로 비스가 산기슭까지이며 4 옥은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주하던 바산의 왕이라 5 그가 다스리던 땅은 헤르몬 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경계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경계에 접한 곳이라 6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여호수아가 정복한 왕들] 7 ○여호수
여호수아 11장에서 여호수아 군대는 가나안 중부와 남부를 장악한 뒤, 마침내 가나안 북부의 동맹군을 격파한다. 이로써 7년여에 걸친 가나안 정복 전쟁을 끝내고 실질적인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된다. [가나안 북방을 취하다] 1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2 및 북쪽 산지와 긴네롯 남쪽 아라바와 평지와 서쪽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3 동쪽과 서쪽의 가나안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산지의 여부스 족속과 미스바 땅 헤르몬 산 아래 히위 족속에게 사람을 보내매 4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백성이 많아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5 이 왕들이 모두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 가에 함께 진 쳤더라 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 하시니라 7 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 가로 가서 갑자기 습격할 때에 8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그들을 격파하고
[이상수 칼럼] 갓끈을 낚아채는 도파민의 시대 스마트폰 화면을 켜는 순간, 우리는 매일같이 누군가의 '갓끈'을 찾아내어 뜯어발기는 가혹한 광풍을 목격한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 실수, 연예인의 과거 사생활, 기업인의 작은 착오나 타인의 연약한 허물은 찰나의 순간에 알고리즘을 타고 퍼져 전 국민적 단죄의 대상이 된다. 흠을 잡고, 파헤치고, 한 사람의 인격을 완전히 매장하는 데 온 사회가 가공할 만한 도파민을 분출하는 시대다. 누군가를 바로 세우기보다 끌어내리는 일에 더 열광하는 우리 사회의 성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갓끈'을 낚아채는 도파민의 정치와 캔슬 컬처 오늘날 한국 사회는 사법적 판단이나 이성적 검증에 앞서 대중적 단죄가 먼저 이루어지는 '사적 심판의 일상화' 속에 살고 있다. 사이버 렉카와 SNS는 타인의 인격적 치부를 상품화하고, 대중은 이에 열광한다. 상대방의 논리와 정책을 검증하는 성숙한 토론은 사라지고, 오직 상대의 약점과 실수를 찾아내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가 주류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정치권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국회와 정당은 국가의 미래를 논하는 정책의 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과거와 허물을 들춰내어
여호수아 10장은 이스라엘과 아모리 다섯 공맹군 간의 '기브온 전투' 장면이다. 여기서 여호수아 군대는 동맹군을 격파하고 다섯 왕을 처형한다. 이어 가나안 남부의 성읍들을 차례로 정복해 나간다. [여호수아가 기브온을 구하다] 1 그 때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빼앗아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주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 중에 있다 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2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3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이르되 4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이는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 5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 6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영에 사람을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전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 우리를 구
여호수아 9장은 이스라엘의 승승장구에 위협을 느낀 가나안 땅의 기브온 주민들이 생존의 자구책으로 위장 전략을 써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장로들을 속이고 화친 조약을 체결하는 장면이다.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를 속이다] 1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2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3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4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5 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6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니 7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조약을 맺을 수 있으랴 하나 8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매 여호수아가 그들
여호수아 8장에서는 범죄자 아간의 처형 이후, 여호수아 군대가 재차 공격을 시도해 아이 성을 함락시키는 장면이다. 이후 이스라엘은 과거 모세의 지시대로 예발 산에 제단을 쎃고 축복과 저주의 율법을 낭독한다. [아이 성을 점령하다]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2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 3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여 매복하되 그 성읍에서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준비하라 5 나와 나를 따르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올 것이라 그리 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6 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추격하며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이상수 칼럼] 유난히 숨이 턱 막히는 뜨거운 계절이다. 문을 나서자마자 밀려드는 열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인상을 찌푸리고, 뉴스 속보는 매일같이 연일 최고기온을 경신하는 폭염 경보를 전하기 바쁘다. 기후변화라는 과학적 진단 앞에서 우리는 이 지독한 더위를 단순히 지구가 아파서 생겨난 재난으로만 여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이 거대한 자연의 열기는 단순한 기상 현상을 넘어 우리 삶의 방식을 깊이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동양의 오랜 지혜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삶이 결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고 보았다.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거친 숨결은 곧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에게 던지는 커다란 질문이다. 올해는 전통적으로 '불'의 기운이 겹치는 특별한 해다. 하늘에도 불이 뜨고 땅에도 불이 가득한 시기라 불린다. 이 뜨거운 불은 만물을 키워내는 따뜻한 생명력이 될 수도 있고,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무서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이 뜨거움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축복이 되기도 하고, 삶을 무너뜨리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숨길 수 없는 진실의 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밝은 빛 아래 드러나기 마련이다. 어두운 곳에서는
여호수아 7장은 아이 성 전투의 실패와 그 원인이 기록된 장면이다. 아이 성 전투의 패배 원인은 아간의 범죄 때문으로 밝혀졌고, 그래서 요호수아는 아간을 처형함으로써 죄악을 제거한다. [아간의 범죄]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3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4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5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이상수 칼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말로 철학의 출발점을 열었다. 이 한마디는 인류 지성의 가장 깊은 통찰이다. 사람은 모든 것을 알아서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지혜를 향한 첫걸음을 내 딛는다. 반대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다. 이것이 철학에서 말하는 무지의 본질이며, 신앙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영적 어둠이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닐 수 있으나, 모름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스스로 옳다고 믿는 순간 무지는 교만이 되고, 교만은 결국 사람을 파멸로 이끈다. 성장의 문을 닫는 교만한 무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모르는 것을 인정하며 배우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모르면서도 안다 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날마다 성장하지만, 후자는 스스로 성장의 문을 닫아 버린다. 빈 그릇은 채울 수 있지만 이미 가득 찼다고 착각하는 그릇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노자는 자신을 비울 때 도가 머문다고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