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 이상수 박사] 부풀려진 허상을 넘어, ‘내면의 출애굽’을 꿈꾸며

 

 

[기고문] 해마다 봄의 문턱에 서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해방의 기록, ‘유월절(Passover)’을 떠올리게 된다. 약 3,500년 전, 억압의 땅 이집트를 탈출한 한 민족의 서사는 오늘날 종교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넘어간다’는 뜻의 유월절은 죽음의 재앙이 한 집을 비껴갔다는 구원의 상징이지만, 그 본질은 인간을 억누르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생명으로 나아가려는 보편적 의지에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마주한 ‘이집트’는 어디인가. 더 이상 채찍을 든 압제자는 없지만, 우리 안에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 존재한다. 끝없는 욕망과 타인의 시선, 비교와 경쟁이 만들어낸 내면의 속박이다. 유월절의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풀면 ‘부풀려진 가짜 나’를 덜어내는 일이다. 발효되지 않은 무교병처럼, 삶을 과장하는 허영과 위선이라는 ‘누룩’을 걷어내라는 요청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해야 하는 시대일수록,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진정한 해방은 익숙한 불행에서 벗어나는 순간 시작된다. 이집트를 떠난 이들이 광야를 택한 것은 안락함 대신 자유를 선택한 결단이었다. 우리 역시 나쁜 습관과 과거의 상처, 스스로를 가두는 고정관념이라는 ‘내면의 노예 상태’를 넘어야 한다. 유월절이 말하는 ‘넘어감’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전환이다.

 

삶의 품격은 높이가 아니라 깊이에서 드러난다. 자연이 겨울을 지나 봄으로 나아가듯, 인간 또한 매일 자신을 비워내며 새로워진다. 꾸밈없는 들꽃이 제 빛을 드러내듯, 삶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때 가장 온전해진다. 억지로 부풀리지 않은 무교병 같은 담백함, 그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절제의 미학이다.

 

결국 유월절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과제다. 내 안의 두려움과 욕망을 넘어서는 순간, 비로소 자유는 시작된다. 낡은 틀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일, 나를 비워 타인을 향해 나아가는 일, 그리고 양심의 방향으로 한 걸음씩 옮기는 일이 곧 ‘일상의 유월절’이다.

 

찬란한 봄볕 아래, 마음속 오래된 누룩 하나를 덜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길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이미 또 하나의 출애굽을 시작한 것이다. 오늘도 중동의 하늘 아래에서는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넘어감’은 증오를 넘어 이해로, 대립을 넘어 공존으로 나아가는 데서 완성된다. 부디 상처 입은 땅 위에 화해와 사랑이 싹트고, 내면의 출애굽이 서로를 향한 손길로 이어져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