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칼럼] 유난히 숨이 턱 막히는 뜨거운 계절이다. 문을 나서자마자 밀려드는 열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인상을 찌푸리고, 뉴스 속보는 매일같이 연일 최고기온을 경신하는 폭염 경보를 전하기 바쁘다. 기후변화라는 과학적 진단 앞에서 우리는 이 지독한 더위를 단순히 지구가 아파서 생겨난 재난으로만 여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이 거대한 자연의 열기는 단순한 기상 현상을 넘어 우리 삶의 방식을 깊이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동양의 오랜 지혜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삶이 결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고 보았다.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거친 숨결은 곧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에게 던지는 커다란 질문이다. 올해는 전통적으로 '불'의 기운이 겹치는 특별한 해다. 하늘에도 불이 뜨고 땅에도 불이 가득한 시기라 불린다. 이 뜨거운 불은 만물을 키워내는 따뜻한 생명력이 될 수도 있고,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무서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이 뜨거움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축복이 되기도 하고, 삶을 무너뜨리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숨길 수 없는 진실의 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밝은 빛 아래 드러나기 마련이다. 어두운 곳에서는 진짜와 가짜, 거짓과 진실이 뒤섞여 누구도 그것을 구별하기 어렵다. 권력으로 덮어두거나 돈으로 교묘하게 가리면 잠시 동안은 세상이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강렬한 빛이 비치면, 감추어두었던 치부와 거짓은 결국 만천하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역사는 늘 이를 증명해왔다. 거짓으로 화려하게 쌓아 올린 명예와 권력은 모래성처럼 무너졌지만, 진실은 비록 오랜 시간 침묵할지언정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품고 살아갈 수 있지만, 세상의 이치 속에서 진실과 거짓이 동시에 참이 될 수는 없다. 참은 오직 하나이고, 거짓은 수없이 많은 가면을 쓰고 우리를 현혹한다. 그래서 진실의 편에 선다는 것은 때로는 외롭고 험난한 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만든 역사는 진실의 손을 들어준다.
거짓에 둘러싸인 사람들은 불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민낯이 드러날까 두려워 숨기 급급하다. 그러나 참된 이들에게 불은 파괴가 아니라 '정화'의 과정이다. 단단한 쇠가 용광로 속에서 뜨거운 불길을 견뎌내야만 온갖 불순물을 걷어내고 진짜 강철로 태어날 수 있듯, 우리의 삶과 인격 역시 시련의 용광로를 거칠 때 비로소 맑아진다. 평온하고 아무 일 없을 때는 나의 믿음이 얼마나 깊은지, 내 내면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 길이 없다. 삶이 흔들리고 바닥을 치는 고난 속에서 비로소 진짜 내 모습이 드러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는 시대적 혼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보는 넘쳐나고 말은 화려하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신뢰는 점점 메말라간다. 화려한 스펙과 지식보다 따뜻한 인격과 양심을 더 그리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은 헛된 계절이 없다
자연에는 그 어느 것 하나 헛된 계절이 없다. 봄의 따스함만으로는 곡식이 여물 수 없다. 여름의 지독한 뼛속까지 스며드는 뜨거움이 있어야 벼가 튼실하게 익어가고,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있어야 땅속의 해로운 병충해가 사라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시련과 고난 역시 헛되이 주어지는 법이 없다. 그것은 우리를 주저앉히기 위함이 아니라, 더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성숙시키기 위해 찾아오는 연단의 시간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무게와 사회적 갈등 역시 언젠가는 지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남긴 교훈은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에 남는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이 시대의 편협한 거짓과 눈앞의 편안함을 좇았는가, 아니면 변하지 않는 진실과 가치를 붙들었는가.' 이 뜨거운 여름의 열기는 바로 우리에게 이 질문을 건네고 있다. 남을 할퀴고 태우는 미움의 불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을 밝히는 따뜻한 빛이 되라고 말이다.
무더위를 대하는 자세
여기서 우리의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무더위를 짜증과 원망으로 맞이하면 우리의 마음이 지치는 것은 물론이고 면역력을 떨어뜨려 결국 건강까지 무너뜨리지만, 반대로 무더위를 감사로 맞이하면 내면의 나약함을 태우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최고의 성장의 기회가 된다. 세상사가 내 뜻대로 풀리지 않고 날씨마저 숨을 막히게 할 때, 우리는 쉽게 분노하고 불평을 쏟아낸다. "왜 이렇게 덥지?", "왜 이렇게 살기 힘들지?"라는 원망은 결국 화살이 되어 나의 영혼과 육체를 동시에 공격한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 보자. 피할 수 없는 폭염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힘차게 울어대는 매미의 소리를 들어보자. 매미는 더위를 원망하지 않고 온몸으로 그 계절을 받아내며 생명을 노래한다. 오늘도 기상청은 연일 최고기온을 경신할 것이라 예보하고 있다. 이 뜨거운 열기를 피하려 전전긍긍하기보다, 이 계절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곱씹으며 온전히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이 무더위를 내 안의 이기심과 거짓, 그리고 게으름을 모두 태워버리는 정화의 시간으로 삼는 것이다.
모든 불평을 내려놓고 "이 더위마저도 나를 단련시키기 위한 은총"이라 여기며 감사로 무더위를 맞이한다면, 불쾌하고 지루하기만 하던 폭염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빚어내는 축복의 빛으로 다가올 것이다.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시대의 흐름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그 변화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삶의 이치는 존재한다. 거짓은 한때 세상을 요란하게 속일 수 있을지언정 영원히 승리할 수 없다. 불은 거짓을 남김없이 태우고, 참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하게 빛나는 법이다.
이 뜨거운 여름날, 창밖을 채우는 매미의 울음소리 속에서 문득 깨닫는다. 무더위는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진짜 참모습을 밝혀주기 위해 찾아온 가장 뜨겁고 정직한 스승이라는 것을. 이 계절을 감사함으로 당당히 건너갈 때, 우리의 삶은 한 뼘 더 깊고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