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칼럼] 작은 텃밭을 일구다 보면 자연이 건네는 무언의 가르침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여름철 오이와 여주를 심었던 자리를 갈아엎고 가을배추를 심었을 때의 일이다. 엉뚱하게도 그 틈새에서 여주 순이 툭 고개를 내밀었다. 배추를 살리려고 뽑아낸 뿌리에는 여주 씨앗이 매달려 있었다. 여름철에 무심코 먹고 버린 참외씨가 가을 들판에서 싹을 틔워 개똥참외 모습을 볼 때마다 생명의 끈질긴 고집과 씨앗의 정직함에 감탄하게 된다.
자연의 이치는 거짓이 없다. 좋은 씨앗이라도 척박한 가시덤불 속에 방치하면 잡초처럼 변해버리고, 볼품없어 보이는 잡종이라도 기름진 환경과 정성을 만나면 숨겨진 힘을 최대한 발휘한다. 사람의 마음과 성품도 이와 같다. 타고난 성품 못지않게 주변 환경과 평소 습관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 오랜 세월 나쁜 행동을 반복하면 몸과 마음이 그 방향으로 굳어져 역량이 시들고 만다. 술을 좋아하는 집안이나 담배를 끊지 못하는 집안의 풍속도 결국은 후천적인 삶의 방식이 대물림되는 부끄러운 습관의 씨앗일 뿐이다.
학교라는 온실, 돈만 쫓는 사람들
사람이라는 귀한 씨앗을 바르게 키워내야 할 첫 번째 책임은 가정의 부모와 형제에게 있으며, 그 울타리를 넓히는 곳이 바로 학교다. 하지만 오늘의 학교를 돌아보면 과연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지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학교는 온통 '사람이 되는 교육'보다 '돈을 잘 버는 기술'을 가르치는 거대한 공장처럼 변해버렸다.
높은 학력을 쌓을수록 지식은 늘어날지 몰라도 지혜를 주관하는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간다. 머리는 똑똑한데 따뜻한 품성은 실종된 채, 오직 돈을 모으는 일에만 매달리는 '돈의 씨앗'들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서로 돕는 미덕이 사라진 살벌한 정글과 같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오직 이익만을 부르짖는 모습 속에서는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되찾아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잃어버린 '사람의 씨앗'을 다시 품는 일이다.
진리의 그릇을 깨뜨리는 종교의 모순
그렇다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야 할 종교는 과연 안전할까. 안타깝게도 사회나 학교보다 어쩌면 더 깊고 심각한 모순에 빠져 있는 곳이 오늘날의 종교계다. 종교란 본디 참된 진리를 찾아가는 겸손한 도구이자 그릇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종교는 '내가 믿는 것만이 절대 진리'라는 교만에 빠져,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타인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곳이 되었다.
원리와 진리는 특정한 사람들끼리만 나누는 비밀이 아니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상식이 곧 진리의 진짜 모습이다. 상식을 내팽개치고 몰상식을 거룩한 교리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억지로 믿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종교가 저지르는 가장 큰 잘못이다. 종교는 진리를 통해 마음을 구원하는 곳이 아니라, 자기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믿고 싶은 것만 진리라고 우기는 거대한 고집으로 변해가고 있다.
본래의 마음을 멍들게 하는 교리의 욕심
그림 속의 꽃은 아무리 정교해도 물감으로 칠해야 비로소 꽃처럼 보이듯, 인간의 마음에 본래 담긴 순수한 마음은 어떤 인위적인 꾸밈도 필요 없는 숭고함 그 자체다. 이미 완벽한 생화와 같은 마음을 가졌기에, 종교는 그저 가만히 다가와 그 마음의 본래 모습을 부드럽게 일깨워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종교는 그 순수한 그릇에 자기들 입맛에 맞는 규칙과 교리를 억지로 집어넣어 사람의 본래 마음을 망가뜨리고 만다.
모두를 품어야 할 거대한 신의 뜻을, 단 한 사람의 지도자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바꾸어 무수한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잘못된 종교가 남긴 가장 아픈 상처다. 신의 거룩한 이름을 팔아 자행되는 끔찍한 다툼과 전쟁, 그리고 개인의 삶을 파괴하며 욕심을 채우는 가짜 종교의 모습은 오늘도 끊이지 않는다. 그들이 요란하게 외치는 믿음의 현장에 과연 참된 신이 존재할까. 그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 속에는 지도자들의 욕심만 가득할 뿐, 진정한 사랑과 자비는 찾아보기 힘들다.
잡초 가득한 마음을 거두는 바른 인격
아무리 기름진 좋은 땅이라도 농부의 손길이 닿지 않고 내버려두면 순식간에 억센 잡초밭으로 변한다. 가을철 들판을 걸어보면 그 땅을 가꾼 농부의 1년 정성과 땀방울이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의 마음 밭도 이와 다르지 않다. 종교나 배움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그 순수했던 마음을 지켜내지 못하면, 어느새 마음의 정원에는 미움과 고집이라는 잡초만 가득 자라난다.
내 마음의 뜰에 지금 어떤 씨앗이 뿌려져 있는지, 잡초가 온통 가슴을 덮고 있는지, 아니면 앞으로 좋은 열매를 맺을 만큼 잘 익어가고 있는지 매 순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거울을 보듯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물어볼 일이다. 지금의 나는 따뜻한 온기를 품은 '사람의 씨앗'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메마른 '종교의 씨앗'이나 '돈의 씨앗'으로 변해버렸는가. 만약 내 안에서 맹목적인 욕심과 차가운 모습이 자라나고 있다면, 오늘이라도 그 삐뚤어진 씨앗을 뽑아내고 참된 사람의 씨앗을 다시 깊게 심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