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칼럼] 집을 짓는 사람은 서두르지 않는다. 기둥을 올리고 지붕을 얹기 전에 먼저 땅을 바짝 다진다. 흙을 한 번 밀어붙였다고 공정이 끝나지도 않는다. 삽으로 흙을 뒤엎고, 물을 촉촉히 뿌리고, 다시 다지고 또 다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지루하고 소모적인 노동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집의 생명과 운명은 바로 그 땅속에서 결정된다. 기초를 소홀히 한 집은 겉모습이 화려하고 거대할수록 더 빠르게, 더 무참히 무너져 내린다.
믿음의 본질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믿음은 하늘을 향해 높이 솟구치는 거창한 탑을 쌓는 일이 아니라, 땅 밑을 향해 끝없이 깊이 내려가는 기초 공사다. 많은 이들이 믿음을 순간의 뜨거운 감정이나 거창한 언어적 고백으로 오인하곤 하지만, 믿음의 참모습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다져지는 진흙과 더 많이 닮아 있다. 요란한 수식어로 자신을 포장하는 믿음보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단단해지는 믿음이 결국 삶의 긴 파도를 견뎌낸다.
바람은 나무를 시험하지 않는다
태풍이 휩쓸고 간 거친 산에 올라가면 종종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다. 수십 년을 자란 거목이 맥없이 뿌리째 뽑혀 쓰러져 있는 반면, 그 곁의 훨씬 작은 나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멀쩡히 서 있곤 한다. 사람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바람의 무자비한 세기만을 탓하지만, 산은 말없이 땅속 뿌리의 깊이를 증언한다.
뿌리가 깊이 박힌 나무는 비바람에 잎과 줄기가 사정없이 흔들릴지언정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오도가도 못하고 흔들리는 것은 지상의 줄기일 뿐이며, 그 시련을 통해 땅속의 뿌리는 오히려 흙을 더 바짝 움켜쥐며 단단해진다. 그러므로 바람은 나무를 무너뜨리기 위해 찾아오는 재앙이라기보다, 그 나무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견고한가를 정직하게 판가름해 주는 심판관에 가깝다. 인생의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시련도 이와 같다. 시련은 우리가 가진 믿음을 빼앗으려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과연 어느 깊이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 찾아오는 계기다.
보이지 않는 다리 위에 서 있는 사회
강을 건널 때 다리 밑을 들여다보며 공포에 떨지 않는 이유는 그 다리가 자신을 안전하게 버텨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은행에 평생 모은 돈을 맡기는 일, 이름 모를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수술대에 눕는 일, 거대한 철골 구조물인 비행기에 몸을 실어 하늘을 나는 일 모두가 결국은 보이지 않는 믿음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의 다리를 건너며 일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는 오직 눈에 보이는 것만을 절대화하는 오만에 빠져 있다. 눈앞의 숫자와 데이터는 맹신하면서도 사람의 따뜻한 진심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기계의 정밀함은 쉽게 믿으면서도 타인의 양심은 믿지 못한다. 정보는 홍수처럼 넘쳐나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신뢰는 바짝 메말라 가고 있다. 오늘날의 시대를 가리켜 단순한 '정보화 시대'가 아닌 '신뢰의 가뭄 시대'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믿음이 고갈된 사회는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울지라도 영혼이 마른 사막과 같다. 물은 천지에 가득하지만 마실 수 없고, 사람은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지만 정작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이가 없다.
망치질을 거쳐 강철이 되는 법
대장간의 노련한 장인은 쇳덩이를 가져다 곧바로 날카로운 칼로 만들지 않는다. 빨갛게 불에 달구고 망치로 수천 번을 두드리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듭한다. 쇠는 망치로 두들겨 맞을수록 약해져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불순물이 빠져나가며 더욱 조밀하고 단단해진다.
사람의 믿음과 인격 역시 이러한 연단의 과정을 통해 성숙해진다. 시련과 고난은 인간의 믿음을 산산조각 내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흔들리고 번민하면서도 다시 그 자리에서 일어설 때, 우리의 믿음은 비로소 어떤 파도에도 균열이 가지 않는 강철이 된다.
따라서 삶에서 만나는 모든 실패와 좌절은 하늘이 내리는 벌이 아니라 단단해지기 위한 연단의 시간이다. 실패는 내 삶의 모든 것이 끝났다는 고통의 종말이 아니라, 허물어진 기초를 처음부터 다시 다져야 할 재정비의 시간이다. 넘어짐은 추락이 아니라, 더 깊고 단단하게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라는 신성한 조언일 수 있다.
하늘이 세우려는 세상과 공동체
사회가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하는 불신의 장이 되는 것은 불행이다. 진정으로 단단한 세상은 서로 간의 믿음이 사람과 사람을 따뜻하게 잇고, 깊은 신뢰가 공동체의 뼈대를 세우며, 순수한 사랑이 삶을 순항하게 만드는 세상이다.
법과 제도는 사람의 신체를 통제하고 행동을 묶어둘 수는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지는 못한다. 촘촘한 계약서는 서로의 이기적인 행동을 제한할 수는 있으나, 가슴과 가슴을 진정으로 연결해 주지는 못한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만 보더라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차가운 법적 의무가 아니라 깊은 사랑과 믿음으로 유지된다. 친구도, 이웃도, 한 국가의 운명도 결국은 신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든든한 주춧돌 위에 서 있는 법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조그마한 자극에도 쉽게 흔들리고 갈등하는 까닭은 외형적인 제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믿음이라는 기초가 너무나 약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조용히 흙을 다지는 사람
믿음은 일회성 단호한 결심이나 한 번의 이벤트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늘 다지고, 내일 또 다져야 하는 끊임없는 현재진행형의 과업이다. 마음이 이기심으로 흔들릴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고, 타인에게 실망해 마음이 다쳤을 때마다 신뢰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화려한 집은 돈과 기술만 있다면 며칠 만에도 뚝딱 지어올릴 수 있지만, 그 집이 안전하게 들어설 단단한 터전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무의 줄기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자라날 수 있어도, 그 나무를 떠받치는 깊은 뿌리는 매일 조금씩 흙을 헤치며 내려가는 법이다.
조용히, 그러나 단 한 순간도 쉼 없이 자신의 터전을 다져가는 사람만이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삶의 폭풍우를 온몸으로 견뎌낸다. 인생을 길게 복기해 보면 당장 눈앞에서 화려하게 성공한 사람이 반드시 마지막까지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풍파 속에서도 자신과의 약속과 사람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켜낸 사람은 끝내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믿음은 특정 종교의 문맥에만 갇혀 있는 언어가 아니라, 우리가 이 거친 세상을 존엄하게 살아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최고 수준의 삶의 기술이며, 인간의 자존감을 지탱하는 마지막 기둥이다. 거창한 공적으로 높이 쌓아 올린 탑을 요구받는 시대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그늘진 곳에서 조용히 흙을 한 삽 더 다지는 실천이다.
세상은 그 보이지 않는 한 삽의 수고를 하찮고 미련한 것으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도히 흐르는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정직한 기초 위에 세워져 왔다. 오늘 스스로의 마음과 타인을 향해 다져 넣은 단단한 한 삽의 믿음이, 내일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을 일으키고, 흔들리는 가정을 구원하며, 마침내 이 사회 전체를 굳건히 떠받치는 신뢰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