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 이상수 박사] 삶의 벼랑 끝에서 만나는 '초심’

 

 

 

 

 살다 보면 누구나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힌 듯한 절벽 앞에 설 때가 있다. 온 마음을 쏟았던 일이 예상치 못한 장벽에 부딪혀 좌절을 맛보기도 하고, 한때 생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소중한 인연이 어느덧 견디기 힘든 가시가 되어 심장을 찌르기도 한다. 이럴 때 흔히 외부의 환경을 탓하거나 상대의 변심을 원망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밖에서 찾으려 분투한다. 그러나 인생의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도 명확한 열쇠는 의외로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 바로 ‘초심(初心)’에 숨겨져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새벽 공기를 기억해 보라. 그때의 당신은 어떤 마음이었는가. 거창한 보상이나 화려한 결과보다는 그저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가슴 벅찬 설렘을 느꼈을 것이며,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온 힘을 다하겠다는 순수한 의지가 충만했을 것이다. 만약 지금 그 일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일의 본질이 변해서가 아니라 성과에 집착하거나 익숙함에 젖어 처음의 뜨거웠던 열망을 놓쳐버린 나의 시선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그 본질과 대면하는 순간, 복잡하게 얽혔던 괴로움의 매듭은 비로소 풀리기 시작한다.

 

 인간관계 역시 이 엄중한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 곁에 있는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한다면, 그 사람을 처음 만났던 그 찰나의 순간으로 돌아가 보라. 첫 만남의 수줍은 인사, 서로를 향한 조심스러운 배려, 그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그 시절의 기억을 곰곰이 반추해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오직 상대가 좋아서, 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해서 맺은 인연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 사람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면, 그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기보다 내 마음의 기울기를 먼저 살펴야 한다. 상대가 변한 것인가, 아니면 상대를 내 기준이라는 틀에 가두고 대접받으려는 아집이 처음의 순수한 애정을 덮어버린 것인가.

 

 우리가 인생의 첫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세상에 풀지 못할 갈등은 없다. 초심은 삶의 항로를 잃었을 때 바라보아야 할 유일한 북극성이자, 나를 비추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해답이 초심에 귀결되는 이유는 그 마음이 무엇보다도 ‘순수’하기 때문이다.

 

 초심은 군더더기 없는 투명한 마음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계산도, 탐욕도, 편견도 섞여 있지 않다. 오로지 대가 없이 주고자 했던 사랑과, 조건 없이 몰입하고자 했던 순수한 생명력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대부분의 번뇌는 이 순수함 위에 덧칠해진 욕심과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내 마음의 때를 벗겨내고, 가장 본질적인 사랑의 원점으로 나를 회복시키는 고귀한 정신적 수행과 같다.

 

 초심은 우리에게 가장 준엄하면서도 따뜻한 답을 건네준다. 험난한 세상 풍파에 깎이고 닳아버린 마음일지라도, 그 깊은 밑바닥에 간직된 순수한 첫 마음을 길어 올린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된다. 지금 당신을 힘들게 하는 그 일과 그 사람 앞에 잠시 멈춰 서라. 그리고 가장 순수했던 그 시작의 순간을 떠올려 보라. 그 순수함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갈 때, 당신의 삶은 다시금 평온과 기쁨의 선율로 채워질 것이다. 초심은 결코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가장 순수한 그곳에 우리가 갈구하던 진정한 구원과 해답이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