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칼럼]
자연의 순환에서 배우는 ‘상도(商道)’의 본질
깊은 산속, 홀로 거목이 되어 숲을 이루는 나무는 없다. 거목이 머리 위로 햇빛을 한껏 받을 때, 그늘 아래에서는 작은 풀들이 자라나고 떨어진 낙엽은 거름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을 키운다. 산마루에 내린 빗방울 역시 높은 곳에 고이지 않고 낮은 곳을 향해 흘러 시냇물이 되고, 강이 되며,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자연은 이처럼 주체와 대상이 서로를 보완하며 주고받는 막힘없는 순환을 통해 전체의 생명을 지속한다.
인간이 영위하는 시장경제 생태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만물은 저마다의 유기적 연계 속에서 존재 목적을 지닌다. 돈 역시 끊임없이 흘러야 살아 숨 쉬고, 사회 구성원 사이를 돌며 건강하게 순환할 때 비로소 경제가 활력을 얻는다. 돈은 어딘가에 가두어 축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살리는 물처럼, 가장 필요한 곳으로 낮게 흘러갈 때 비로소 제 가치와 역할을 증명하는 법이다.
얼마를 소유해야 만족할 수 있는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흔히 묻는다. “얼마를 가져야 부자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마주해야 할 더 본질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얼마를 가져야 만족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타락한 소유욕에는 끝이 없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숫자가 늘어날수록 마음은 오히려 더 빈곤해지는 역설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산은 아무리 높아도 하늘을 독차지하려 하지 않고, 바다는 세상의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넘치는 법이 없다.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제 분수(分數)를 알고 상대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참된 부는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가진 것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만족의 깊이’에서 태어난다.
조선의 거상(巨商)들은 장사를 단순히 자본을 증식하는 기술로만 보지 않았다. 그들은 신용을 목숨처럼 여겼고, 약속을 재산보다 귀하게 여겼다. 눈앞의 고객 한 사람을 속여 당장의 이익을 취할 수는 있겠지만, 신뢰를 잃으면 평생의 기반을 잃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도(商道)의 핵심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많이 얻는 것’이었다. 이익만 남기면 단발성 거래로 끝나지만, 신뢰를 남기면 시대를 관통하는 인연이 된다. 나보다 상대를 먼저 위하는 덕(德)이 결국 나를 살리는 길이다. 이것이 시대를 관통하는 참된 경제의 본질이다.
비판은 부(富)가 아니라 고인 물이다
시장은 부(富) 자체를 무조건 미워하지 않는다. 정직한 노력과 창의적 혁신으로 성공을 일군 기업인은 오히려 대중의 존경을 받는다. 문제는 부의 크기가 아니라 부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숲에서 가장 큰 나무는 가장 많은 햇빛을 받지만, 동시에 가장 넓은 그늘을 만들어 수많은 생명을 품어 안는다. 많이 가진 만큼 자기의 품을 더 많이 내어주어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 우주의 유기적 질서다.
본래 인간의 소유는 개인의 독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위탁받은 것에 불과하다. 만약 기업이 이익은 홀로 차지하면서 책임은 사회에 떠넘기고, 노동의 가치를 외면한 채 사익만을 앞세운다면 대중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비판받는 것은 부 자체가 아니라, 부가 사회라는 유기체 안에서 순환하지 못하고 고여 부정부패라는 이름으로 썩어갈 때다. 대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협력업체와 상생하며,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공익적 책임을 다할 때 참된 상생이 시작된다. 열매가 많이 열린 나무일수록 가지를 낮추듯, 많이 가진 자가 큰 책임감과 겸손을 가질 때 부는 혐오가 아닌 축복이 된다.
움켜쥐면 굳어지고 나누면 넓어진다
우리 몸의 피가 흐르지 않으면 생명을 잃듯, 시장의 돈도 끊임없이 돌고 돌아야 한다. 주고받는 작용이 멈추면 생태계 전체가 마비된다. 돈이 시장과 사람, 그리고 사회의 골목골목을 순환할 때 일자리가 생기고 가정이 안정된다. 돈을 움켜쥐려는 손은 언젠가 굳어버리지만, 전체를 위해 나누고 펼친 손은 더 많은 손을 맞잡게 된다. 햇빛은 부자의 마당만 비추지 않고, 비는 가난한 이의 들판도 골고루 적신다. 차별 없는 자연처럼 인간의 마음이 '위하는 삶'의 방향으로 흘러갈 때 세상은 비로소 평화로운 온기를 띤다.
상도의 최종 기준은 ‘얼마나 벌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바르게 벌었고, 얼마나 가치 있게 썼는가’에 있다. 꽃은 향기를 독차지하지 않고, 나무는 그늘을 혼자 누리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서로를 위해 존재하도록 창조되었기에, 숲이 함께 자라야 아름답듯이 사람도 공생·공영·공의의 정신으로 함께 잘살아야 참된 행복에 이른다. 진정한 부자는 가장 많은 재화를 움켜쥔 자가 아니라, 세상에 가장 선한 영 영향력과 희망을 남긴 사람이다.
돈은 강물과 같다. 막아두면 썩지만 흘려보내면 생명을 살린다. 돈을 버는 목적은 개인의 축재라는 끝이 아니라, 이웃과 세계를 향한 상생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시작이다. 그 부가 사람을 살리고, 이웃을 품으며,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곳으로 흘러갈 때 비로소 인간의 경제는 신성한 활력이 난다. 혼자만 살아남는 숲은 없고, 혼자만 가득 채우는 바다는 없다. 함께 흐르고 함께 살아갈 때 생명은 영원히 이어진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다시 세워야 할 상도의 기준이며, 하늘이 인류에게 오래전부터 보여준 위대한 섭리의 천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