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년 재도약, 아웃플레이스먼트만으로 충분한가?|김한준 박사의 신중년 인생설계 #2

  • 등록 2025.08.03 2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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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년, 불안한 전환과 낡은 설계

 

퇴직을 앞둔 50대 후반의 이 모 씨는 최근 회사에서 제공한 ‘재취업지원서비스’ 교육을 받았다. 이력서 작성법, 면접 코칭, 창업 특강까지 짜임새 있는 커리큘럼이었지만 강의장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현장감이 너무 없었어요. 수십 년 한 업종에 몸담은 사람에게 이직을 위한 실습이라기엔 현실성이 없더라고요.”

 

신중년을 위한 ‘인생 2·3모작’은 이제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 되었다. 기대수명이 83세를 넘는 오늘날, 정년퇴직 이후에도 20년 이상은 일하며 살아야 한다. 이에 정부는 2020년부터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에 따라, 1,000인 이상 사업장은 50세 이상 퇴직 예정자에게 전직지원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했다. 일종의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다. 심리 안정, 진로 설계, 창업 컨설팅까지 전방위적 지원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이와 다르다. 울산경제일자리진흥원 김철준 원장은 “신중년 다수가 법적 혜택 밖에 있고, 중소기업 종사자는 퇴직 후 준비조차 엄두를 못 낸다”라고 지적한다. 법률의 사각지대에서 수많은 신중년이 여전히 ‘인생 2모작’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직지원서비스 자체의 성과도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비스는 표준화된 프로그램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개인의 경력단절, 산업 미스매치, 기술 격차 등 복합적인 현실을 반영하기에는 부족하다. 특히 사무직 퇴직자의 경우, 비슷한 업무로의 재진입이 매우 어렵고, 직업훈련 참여에 대한 심리적·물리적 장벽도 높다. 결국 많은 신중년이 재취업 대신 ‘은둔’ 혹은 ‘불완전한 자영업’으로 떠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제도가 일자리의 질 개선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업무의 연장선상에서의 고용 유지 전략이나 지역 기반 일자리 매칭 같은 맞춤형 대안 없이, 일괄적인 교육 중심 처방으로는 실제 전환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고용노동부의 성과보고서에서도 재취업 성공률에 대한 객관적 지표는 미비하거나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항목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지금의 생애설계 시스템은 단편적이고 형식적이다. 기업과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퇴직지원은 현실을 따르지 못한 채, 낡은 구조 속에 머물러 있다. 단순한 보완이나 점검 수준으로는 어림없다. 신중년 세대가 진정한 인생 2모작·3모작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려면, 생애 전환기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생애설계는 퇴직 직전이 아닌 입직 직후부터 시작돼야 한다. 지금까지의 전직지원 서비스는 퇴직 직전 1~2년에 집중되어 있어 실질적인 전환 설계로 이어지기 어렵다. 입직 3년 차부터 ‘경력내비게이션 시스템’을 가동하고, 생애주기에 따라 커리어 경로와 역량을 점검할 수 있도록 입직-중년기-퇴직기 3단계 기반의 생애설계 리포트를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1,000인 이상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전직지원 의무는 현실의 절반도 반영하지 못한다. 신중년의 다수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공공영역 외부에 분포되어 있음에도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따라서 전국 고용센터, 평생교육기관, 사회복지시설 등을 연계한 ‘공공형 생애설계 허브 플랫폼’을 법정화하고 지역 기반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인생 3모작 정책의 초점은 단순한 재취업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의 발견’에 맞춰져야 한다. 정규직 재고용에만 집착하는 정책은 노동시장의 현실을 왜곡할 뿐 아니라, 신중년의 삶의 다양성과 가치를 축소한다. 따라서 기존 업무 연계형 파트타임, 사회공헌형 일자리, 귀농귀촌형 생활직무 등 ‘역할 기반 생애전환 모델’을 구축하고, 그에 맞는 신중년 전용 직무군을 제도적으로 분류·지원하는 작업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전환 없이는 신중년의 생애 2·3모작은 여전히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의 문제’로만 남게 된다. 개인의 준비도 중요하지만, 국가가 설계도를 바꿔야 인생 3모작의 경로는 현실이 된다. 지금이야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기관, 중앙부처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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